예전에 동료 대학원생들과 신종 개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떤 대학원생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나 할까요?”라고 물어서, 내가 “그런 말을 의미를 가진 언어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지만 재즈 공연에서 하는 스캣 같은 걸로 본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개소리쟁이들이 서로 개소리를 주고받는 것을 의사소통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내용의 대화가 오가는 것인지 알 수 없겠지만, 일종의 잼 세션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리듬감에 약간씩 몸을 흔드는 것을 보며 ‘아, 저 사람이 감각이 더 좋은가보다’ 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 나의 스캣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사례를 알게 되었다. 어떤 깐깐한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에서 어떤 학생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니, 그 선생님이 그 학생보고 무슨 말인지 다시 말해보라고 하여 학생은 선생님이 연로하여 귀가 어두운가 싶어서 방금 말한 것을 그대로 다시 말했다. 그렇게 하니까 선생님은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니, 말을 하랬더니 왜 키워드만 늘어놓는 거야?”
나는 그 선생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학생이 누구인지도 모르므로, 어느 분야에서 어떤 주제로 어떤 대화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흥미로운 것은 선생님의 반응이다. 만일 내가 어떤 개소리를 듣는다면, ‘어디서 또 미친 놈이 굴러왔네’ 라고 생각할 텐데, 그 선생님은 그 와중에 키워드를 추출하고는 왜 키워드만 늘어놓느냐고 한 것이다.
그 선생님과 학생의 반응은, 마치 음표는 없고 코드만 적힌 악보를 본 클래식 피아노 전공자와 재즈 피아노 전공자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음악은 잘 모르고 그냥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악보에 아무 음표가 없고 코드만 적혀 있으면 클래식 피아노 하는 사람들은 왜 악보에 아무 것도 없느냐고 하고 재즈 피아노 하는 사람들은 무슨 곡인지 알겠다면서 그냥 친다고 한다. 코드만 적힌 악보를 보고, 선생님은 코드만 있지 아무 것도 없다고 하고, 학생은 연주하기에 충분하다고 한 것이다.
* 뱀발
예전에 내가 스캣 가설을 제기했을 때, 스캣은 개소리하듯이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것이 아니며 개소리를 스캣에 비유하는 것은 재즈에 대한 모욕이라는 의견을 들은 적이 있었다. 솔직히, 나도 개소리를 스캣에 비유하는 것은 재즈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더 나은 비유를 찾지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스캣에 비유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개소리도 정말로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것도 아니다. 개소리를 잘 듣다 보면 개소리쟁이들의 기량 차이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소리쟁이들이 철학에 아무 것도 모르면서 “존재론”, “인식론”, “형이상학” 같은 단어를 자기 마음대로 막 넣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말로 모르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타고난 리듬감 같은 것이 있는지 언제 어느 자리에 각 단어를 배치해야 하는지 직감적으로 알고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개소리라고 하여 다 같은 반열에 있는 것이 아니며 정답까지는 아니어도 일종의 모범답안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2022.08.25.)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