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2

알파고와 창의성



알파고가 이세돌을 바둑으로 이기자, 언론에서는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기는 방법은 창의성을 기르는 것뿐이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어떤 교수들은 간첩도 아닌데 자기 전공을 바꾸어가며 언론과 인터뷰했고, 일부 교수나 자칭 전문가들은 창의성을 기르려면 영어나 수학은 그만하고 인문학이나 예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덮어놓고 무조건 외우는 것과 따져가며 기억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아무 것도 모르고 패턴을 외우는 것과 원리를 알고 규칙을 파악하는 것의 차이일 것이다. 그런데 알고 외우든 모르고 외우든 어쨌거나 창의적인 뭔가가 나오기 전까지 기존의 것을 계속 배우고 습득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제대로 본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 되는 대로 만들어냈더니 뭔가 훌륭한 것이 나왔다는 사례가 하나라도 있는가? 문학이든 철학이든 과학이든 예술이든 그런 사례가 있는가?

내가 바둑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는 한데, 바둑을 배운 사람들에 따르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활 외우고, 포석 외우고, 여러 가지 기보 외우고, 하여간 뭔가를 계속 외워야 한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10급 열 명이서 머리 맞대고 백날 고민해봐라. 1단을 이기나.” 기본에 충실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고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보아야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작 이세돌은 알파고의 수가 창의적이라며 극찬을 하는데, 언론에 얼굴 비치기를 즐겨하는 떠벌이들은 설렁설렁 몽상이나 하고 딴짓이나 하면 사람 머릿속에서 신기한 게 알아서 뚝딱 나오는 것처럼 헛바람을 넣는다.

왜 창의성을 기존 지식 체계에 대한 비판적 검토라고 보지 않고 천재의 광기 같은 것으로 보는가? 반복 훈련과 창의성을 상반되는 것으로 보는 이상한 이분법이 예전부터 있었고 언론은 그것을 확대 재생산했다. 창의성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도대체 창의성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의문을 품었을 것이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생각에 의심을 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언론에서 창의성 이야기가 넘친다는 것은, 창의성 없는 사람들이 활개 치고 돌아다닐 만큼 한국 사회에 창의적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람들은 창의성이 부족해서 문제다.

* 링크: [연합뉴스] 알파고는 어떻게 강해졌나... “자신 스승삼아 셀프대국 무한 반복”

( www.yna.co.kr/view/AKR20170524138500089 )

(2017.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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