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5

유튜브 채널 <과학드림>의 운영자를 <선배와의 만남>의 연사로 모시게 된 사연

철학과 학부 수업인 <과학철학>을 가르치는 동료 대학원생이 수업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끔씩 학생들이 찾아와서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굳건했던 과학관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고 실토할 때, 동료 대학원생은 수업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동료 대학원생에게 물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공계 학생들이겠죠?” 동료 대학원생은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수업을 듣고 과학관이 흔들렸다는 것은 어쨌든 과학관이 있었다는 거니까요.”

나는 과학 활동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과학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교양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과학 문외한들이 과학철학 수업 좀 듣는다고 과학에 대한 이해가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과학철학 수업이 과학에 대한 건전한 태도를 담보하는지도 의문이다. 과학 문외한이면서 똑똑하지도 않은 인문대생이 과학철학 수업에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는다고 하자. 그 학생이 ‘경제학과 복수 전공하면 연습 문제를 열심히 풀어야겠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상한 상대주의자가 될 가능성도 그렇게 낮지는 않다. 쿤이 자기가 상대주의자 아니라고 죽을 때까지 말하고 다녔다고 한들, (멀쩡한 철학과 말고) 망한 철학과의 학부생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학부 다닐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왔는지 “과학은 사유하지 않는다” 같은 소리를 하도 다니던 학생들이 있었다. 사유하지 않는 것은 과학이 아니고 자기일 테고 그러니까 그딴 소리나 하면서 돌아다녔겠지만, 그런 놈들이 돌아다니는 판에 과학철학 수업을 한들, 그리고 수업을 잘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 나아가, 과학사나 과학기술학에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가 어떻다고 하든, 과학과 냉전이 어떻다고 하든, 그게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이해를 늘려줄까?

한국에 대학이 서울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대학생이 모두 다 똑똑한 것도 아니다. 과학학 관련 교양 수업이 대학에서 늘어나면 좋기는 좋겠지만, 과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좋을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과학학이 아니라 교양 과학일 수도 있다. 가령, 실제로 자연과학에서 어떤 식으로 추론하고 논증하는지 보여준다면,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자기가 사유하지 않아놓고 과학은 사유하지 않는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고, 경제학에서 어떤 식으로 추론하고 예측하는지 보여준다면, 아무리 근성이 썩었다고 해도 경제학이 이데올로기의 산물일 뿐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과학철학>을 수업을 맡은 대학원생에게 대충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며 유튜브 채널 <과학드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과학드림>에서는 단순히 사실 전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의 비교적 최근 논쟁에 관한 리뷰를 하는데, 과학학 수업보다는 그런 식의 교양 과학이 과학에 대한 건전한 태도를 가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마침 내 이야기를 들은 대학원생은 학과 조교이기도 했다. 과학학과에서는 학기 중 한 달에 한 번씩 <선배와의 만남>이라는 행사를 해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다.(여기서 선배는 꼭 대학원 선배일 필요는 없고 인생 선배 같은 넓은 의미의 선배다.) 기존의 <선배와의 만남>에 섭외된 선배가 학술 분야로 편중되었으니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시자는 학생 의견이 나왔고, 그래서 학과 조교는 과학 유튜버를 모실 생각을 했는데, 내 이야기를 들으니 <과학드림>의 운영자를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과학드림> 채널의 운영자를 오늘 진행한 <선배와의 만남>의 연사로 모시게 되었다.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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