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만든 개비온을 어떤 놈이 차로 들이받았다. 정확히 언제 차로 들이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몇 달 전에 그 사실을 확인했다. 가로로 눕혀서 만들 것을 일부러 세로로 세워서 만들었는데, 기울어지지 말라고 땅을 파고 돌을 깔아 간단한 기초 공사를 하고 수평을 맞추었는데, 배부름 현상이 나타나지 말라고 중간중간에 철사로 잡아주었는데, 외관상 보기 괜찮으라고 속은 폐콘크리트를 쓰면서도 겉은 자연석을 썼는데, 그런 개비온을 어떤 놈이 차로 들이받은 것이다. 화가 안 날 수 없었다. 누구인가? 누가 내 개비온을 들이받았는가?
아마도 근처 전원주택 공사 현장에 출입하는 공사 차량이 내 개비온을 받았을 것이다. 덤프 트럭이 간혹 실수로 진입로를 혼동하여 공사 현장이 아니라 우리집 쪽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 들이받은 게 아닌가 싶다. 두 달 전에는 내가 집에 있을 때 덤프 트럭이 우리집 쪽으로 내려오다가 후진으로 거슬러 올라간 일도 있었다.
곧바로 시청에 민원을 넣었어야 했는데 여러 일이 있어 정신이 없어서 8월 중순 쯤에 민원을 넣었다. 내가 넣은 민원의 내용은, 시청에서 전원주택 단지에 허가한 진입로는 서쪽 길인데 전원주택 공사 차량이 동쪽 길을 이용하여 주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도로가 파손되고 있으니 동쪽 길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전원주택 단지는 서쪽 길을 진입로로 하여 건축 허가를 받았고, 실제로도 서쪽 길이 멀쩡하게 있다.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사용하지 않고 엉뚱한 길을 사용하여 마을에 피해를 주는 것은 시청이 막아야 하는 일이고, 만일 서쪽 길을 사용하기 어려운데도 시청이 허가를 내준 것이라면 시청이 잘못한 것이므로 업체가 왜 서쪽 길을 사용하지 않는지 조사하고 동쪽 길을 사용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 한 달 전에 민원을 넣었는데 시청에서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답변연장 신청을 두 번 했다.
서쪽 진입로를 사용할 수 없는지, 사용할 수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것은 시청에서 조사할 일이고, 나는 나대로 내 개비온을 들이받은 자에 대한 복수를 해야 했다. 아마도 개비온을 하나만 세우니까 만만해 보여서 운전자가 주의를 덜 기울인 것 같았다. 보자마자 공포심이 들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들이받으면 내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려면 일단 크기가 커야 했다. 여러 개를 한 번에 연결해서 세우기로 했다. 어차피 누군가가 또 들이받을 수 있으니 이번에는 외관상 보기 좋으라고 속돌과 겉돌을 다르게 할 필요도 없었다. 폐-콘크리트만으로 개비온 속을 채워넣기로 했다. 다니는 사람이 적을 때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추석 연휴 동안에 개비온을 세웠다. 남들은 송편을 만들 때 나는 개비온을 만들었다.
각 변이 두 배 커보이도록 하려면 개비온 네 개를 연결해야 하지만, ㄴ자로 만들면 세 개만 연결해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개비온 세 개를 ㄴ자로 연결한 다음 그 면적만큼 땅을 팠다. 삽 깊이만큼 땅을 한 다음 돌을 구해서 넣고, 개비온 뼈대를 올리고 자갈을 조금씩 넣으면서 수평을 맞추었다. 뼈대 세 개를 연결할 때 잘못 연결해서 수평이 약간 안 맞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겠다 싶어서 개비온 뼈대 안에 돌을 채워 넣었다. 환경을 생각해서 자연석은 안 쓰고 폐-콘크리트만으로 개비온을 채웠다. 화강암의 단위 비중이 2.5-2.7인 것을 감안하면 내가 손수레로 나른 돌이 2톤 정도 될 것이다.
내가 작업하는 것이 신기한지 지나가던 노인들이 나보고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간단히 답했다. “공사한다고 큰 차가 다녀서 보행자 안전을 위해 개비온을 만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내 복수를 위한 것이지만 공적으로는 마을 노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 답변을 들은 노인들은 대부분 좋아했다. 어떤 할머니는 개비온을 더 크게 만들라고도 했다.
옆옆집에 사는 중장비 기사 아저씨는 내가 개비온 만들기 시작할 때 개비온 세트 하나에 얼마나 하느냐며 관심을 보였는데, 내가 개비온을 거의 다 만든 것을 보고는 “아유,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어? 돌이 딱딱 맞네”라고 하며 감탄하고는, 현장에서 본 이야기를 했다. 내가 재능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원래는 개비온의 뚜껑까지 돌을 꽉 채운 다음에 뚜껑을 닫아야 하는데, 그렇게 돌을 꽉 맞추자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일단은 임시로 뚜껑을 닫아놓았다. 현 상태로도 개비온이 충분히 기능을 하기 때문에 일단은 현 상태로 두고, 시간 날 때 돌을 마저 채워 넣을 생각이다.
(202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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