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9

과학철학에서의 구획 문제



이번 학기에 같은 연구실의 석사과정생이 <과학철학통론2>를 듣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학철학통론2>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이 구획 문제이다.

옆에 있던 공대 출신 박사과정생은 몇 년 전에 들었던 <과학철학통론2>에서 구획 문제를 배울 때의 이야기를 했다. 철학적 작업이라는 것 중 상당 부분이 정의에 관련된 것이고 그런 작업들을 살펴보면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그 분야에 대해 이해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구획 문제는 과학의 정의에 관한 문제인데도 과학에 대한 이해를 늘리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동료 대학원생은 말했다. 가령, 예술 철학에서 예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예술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는 것 같고, 인식론에서 지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지식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는 것 같은데, 과학 철학에서 과학이 무엇이냐, 과학은 사이비 과학과 왜 다르냐고 물었을 때 과학에 대한 이해가 늘어난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동료 대학원생의 물음에 대한 나의 답변은, “누가 범인인지 이미 알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예술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는, 어떤 것이 예술인지 몰라서 묻거나 자신은 어떤 게 예술인지 확신하더라도 공동체적인 합의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묻는 것이라서, 예술의 개념이 확장되거나 정교해지고 이전에는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것이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인식론도 마찬가지다. 정당화된 참인 지식이라는 것 말고도 지식을 정의하는 다른 조건이 있는 것 같은데 모르겠으니까 철학자들이 머리를 쥐어짜서 헛간이 어쨌다느니 통 속에 두뇌를 넣었다느니 하며 온갖 사고 실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구획 문제는 다르다. 이미 범인이 정해져 있고 모두가 그걸 다 알고 있다. 생긴 것부터 범인처럼 생겼다. 그러니 구획 문제를 배운다고 해서 과학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형사가 묻는다. “이름!” 맡은 편에 앉아 있는 용의자가 대답한다. “점성술이요….” 형사가 조서에 적는다. “점~ 성~ 술~.” 형사가 점성술의 직업을 묻는다. 점성술이 대답한다. “과학이요….” 형사가 점성술을 발로 찬다. 점성술이 앉아 있던 바퀴 달린 의자가 뒤로 쭉 밀리고, 점성술이 의자에 앉아서 발을 바닥을 차며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형사가 묻는다. “직업!” 점성술이 대답한다. “과학이요!” 형사가 또 점성술을 발로 찬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면 점성술이 이렇게 대답한다. “사이비 과학이요….”






소설이나 영화에 비유하자면, 예술 철학에서 예술의 정의를 묻는 것이나 인식론에서 지식의 정의를 묻는 것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가깝고, 과학 철학에서 구획 문제는 강우석 감독의 강철중 시리즈에 가까울 것이다. 강철중 시리즈에서는 처음부터 범인이 정해져 있고 저 놈을 어떻게 족쳐야 하는지를 두고 영화가 진행된다.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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