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철학이나 철학과를 소개하는 글이나 영상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철학이나 철학과에 대한 일반인의 오해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철학과 졸업해도 철학관을 차리지 않는다는 둥 굶어 죽지 않는다는 둥 철학을 이해하는 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내용을 굳이 홍보 글이나 영상에 넣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가?
어느 학문이든 어느 학과든, 자신의 전공 학문이나 소속 학과를 그딴 식으로 홍보하지 않는다. 물리학은 이러저러한 것이다, 재료공학과에서는 이러저러한 일을 한다는 식으로 깔끔하게 기술한다. 경제학처럼 온갖 오해를 받는 학문이라고 해도, 경제학이나 경제학과를 홍보하는 영상에 “경제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냉혈한이 되지는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지는 않는다. 철학이나 철학과를 홍보하는 일부 미친 놈들만 그러는 것이다.
그런 기괴한 홍보 글이나 영상은, 철학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개론>에서 배웠을 법한 내용 중에서도 매우 기초적인 것을 피상적으로 몇 개 나열하다가, 그나마도 모르겠는지 사회 현상을 철학적으로 해석해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다가, 웃기지도 않는 농담 몇 마디 하다가, 더 만들 수 있는 것도 없고 반응도 없으니까 그만두는 것이다. 아는 것도 쥐뿔 없으면서 왜 철학을 내세우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하여간 학부 때 철학과 다녔답시고 글을 써보겠네 영상을 만들겠네 하다가, 기억을 더듬어도 아는 것은 없고 새로 책을 본다고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어서 한동안 난감하다가, 일단 시작하면 수가 생길 것 같아서 시작은 하는데, 그렇다고 철학이 무엇인지 간단명료하게 말할 수도 없어서, 철학과에 대한 이러저러한 오해가 있네 어쩌네 하며 너스레나 떨다가, 결국에는 글이든 영상이든 접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철학과 철학과에 대한 홍보 글이나 영상이라고는 철학과에 대한 오해가 있네 없네 하는 똥글과 똥영상만 남는 것이다.
학과마다 망한 학생은 있기 마련이고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전공이나 학과에 대해 남들에게 명확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유독 철학과에서 망한 학생들 중 일부에게만 철학이나 철학과에 대한 비-정상적인 애정이 생기는 것이다.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애정을 좀 버리지, 그들은 왜 애정을 못 버리는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한때 경제학도였던 사람도 있고 한때 물리학도였던 사람도 있다. 그들이 얼마나 똑똑한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일단 나보다는 훨씬 똑똑한 사람들인 것은 분명한데, 학부 때 배웠던 것에 대해 말하기를 극히 꺼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학문에 애정이 있었고 잘 해보려고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들은 학부 전공에 대해 말하기를 가슴 아픈 첫사랑에 대해 말하기 꺼려 하는 것처럼 꺼려 하는 것이다. 굳이 그러한 똑똑한 사람들 말고 평범한 사람들만 놓고 봐도 비슷하다. 여간해서는 자신의 옛 전공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주접을 싸지는 않는다.
(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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