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는 적어도 총알 세 발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선생님이 한 이야기를 동료 대학원생을 통해 건너 들은 것인데, 여기서 총알은 언제든지 투고할 수 있는 논문 원고를 말한다. 언제든지 투고할 수 있는 논문이 최소 세 편 이상은 있어야 연구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왜 세 발이냐, 왜 두 발이나 네 발은 아니냐고 물었다. 동료 대학원생은 왜 세 발인지는 못 들었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로널드 기어리도 했다. 기어리에게 직접 들은 선생님에 따르면, 기어리는 대학원생들 앞에서 “연구자는 어떤 사람인가? 리뷰 받고 있는 논문이 세 편 이상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좋은 말인데, 왜 세 편인지는 기어리도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왜 총알 세 발인가? 모잠비크 드릴로 쏠 경우 한 명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총알 세 발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런데 두 명이 덤비면? 30명쯤 몰려오면? 두 발로 두 명 죽이고 한 발은 자기 머리에 쏘나?
내가 지금까지 쓴 논문이라고는 석사학위 논문 하나뿐이라서, 투고할 수 있는 논문이 왜 세 편 이상이야 하는지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논문 작성 과정의 순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들 하시는 것을 보면, 논문 초고를 쓴 다음에 곧바로 투고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은 학술대회 등에서 발표하고 의견을 받고 비판을 참고해서 수정하고 다시 발표하는 과정을 거치다가 완성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섰을 때 논문을 투고하거나, 그렇게 논문을 투고해서도 게재 불가 판정을 받고 심사 의견을 참고하여 수정하고 다시 투고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고려한다면, 발표-수정-투고의 순환을 멈추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논문 원고의 최소량은 세 편일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논문 원고를 항공모함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어디서 얼핏 주워들은 거라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항공모함이든 경-항공모함이든 전력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최소 세 척은 필요하다고 한다. 한 척은 작전을 수행하고, 다른 한 척은 훈련받고, 나머지 한 척은 정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훈련과 작전 수행과 정비의 순환 과정만 놓고 본다면, 논문 작성의 순환 과정과 비슷해 보인다. 그리고 똑같은 논문 원고라도 하더라도, 총알 세 발이라고 하기보다는 항공모함 세 척이라고 하면 기분이 약간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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