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평안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 원래 의가 좋았던 형제였는데 재산 분쟁이 벌어져서 이제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다 여자가 자기 남편을 꼬드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하여 저절로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피상적인 경험을 많이 한다고 하여 아는 것이 늘어나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내심 싫으면서도 싫다고 직접 말하기는 껄끄러운 상황에 남 핑계를 대는 일은 매우 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어린 아이가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데 어떤 놈이 와서 몇 개 달라고 한다고 하자. 그 아이는 자기 것을 주기 싫지만, 싫다고 직접 말하기에는 힘이 모자랄 수도 있고, 힘은 모자라지 않지만 나누어먹지 않을 명분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럴 때 하는 말이 “엄마가 나 혼자 먹으랬어!”다. 엄마가 혼자 먹으랬든 말든, 사실 옆에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같이 먹자고 할 것이었을 텐데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고 치자. 돈이 없다고 했어야 했는데, 상대방이 돈을 빌려달라고 할 줄 모르고 이미 돈 자랑을 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히 의절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인적 네트워크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면 그러한 의절은 작지 않은 손실로 나에게 되돌아올 수도 있다. 상대방으로부터 얻는 이득을 유지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비용은 최소화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면 되는가? 배우자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말하면 된다. 어쩌면, 배우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상대방에게 안 된다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형제들이 재산 분쟁을 겪는다면, 전래동화에 나올 법한 의좋은 형제가 여자에게 현혹되어 그렇게 된 것이겠는가, 아니면 애초부터 재산을 더 먹을 마음인데 악역을 자기 부인에게 뒤집어씌운 것이겠는가? 다른 껄끄러운 일을 처리할 때는 죄다 남 핑계를 대다가, 오직 형제간의 일에서만은 남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남에게 현혹된 것이겠는가?
사람들은 별별 이유로 이혼한다. 부모 재산 가지고 싸울 정도라면 부부가 상당히 오래 살았을 것이고, 그 정도 살았으면 질릴 때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 때 부인이 남편을 현혹하여 형제들과 불화를 일으키려 한다고 해보자. 이혼하기에 이렇게 좋은 기회와 명분도 없다. “형제는 수족 같고 처자는 의복 같거늘!”이라고 호통치고 이혼한 다음, 주말마다 산악회에 다니고 친구들한테 동창회 언제 하느냐고 물어볼 만하다. 그런데 그렇게 집안에서 분쟁이 나고 난리가 났는데 정작 부부 사이는 괜찮다면, 재산 분쟁 때 하는 개억지가 형이나 동생의 뜻이겠는가, 아니면 형수나 제수의 뜻이겠는가? 원래 착한 놈이었는데 부인을 잘못 만나 현혹된 것이겠는가, 아니면 원래부터 글러먹은 놈인데 어렸을 때의 흐릿한 기억에 기반하여 오판한 것에 불과하겠는가?
(202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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