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4

다시 논이 되고 있는 물류창고부지


법원에서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이 나왔다. 피고(우리집)는 농로에서 이루어지는 원고(공사업체)의 공사업무 일체를 방해하지 말고 우리집 토지 사용을 허락하며, 원고는 피고에게 토지 사용료 700만 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고, 소송비용 및 조정비용은 각자 부담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측 변호사는, 2주 이내에 이의를 할 수 있으며 이의 신청하지 않으면 결정문이 판결문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점과 원고 측이 소형 굴삭기로 흄관매설작업을 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하면, 이의하여 손해배상소송을 계속하더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실익이 없는 점을 고려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글을 나에게 보냈다. 나는 변호사에게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에 이의 신청하고자 한다는 점과 더불어, 손해배상 소송을 계속하더라도 우리에게 실익이 없음을 변호사에게 들어서 인지하고 있다는 점, 원고 측이 소형굴삭기로 흄관매설작업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으나 모친 소유 토지를 침범하지 않고 소형 굴삭기만으로 해당 작업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농로만을 이용하여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공사 진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밝혔다. 이제 정식 재판 절차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변호사가 법원에서 원고 측에 토지 사용료로 7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한 것을 보면, 조정기일에 변호사가 토지 사용료로 1천만 원을 제시한 것도 합리적인 판단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고작 단돈 700만 원을 받고 싸가지 없는 업체가 동네를 난장판 만들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소송에서 일부 패소하여 몇 천만 원을 물어낸다고 해도 이를 감수할 생각이다. 몇 천만 원을 안 물어내고 동네가 난장판이 나면 주거환경이 안 좋아진다. 동네 노인네들이야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고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고 치더라도, 나와 나의 부모님의 예상 수명을 고려하면, 몇 천만 원 물어내고 공사를 못하게 하는 것이 낫다. 아파트에 사는 변호사 입장에서야 그냥 시골이나 난장판 난 시골이나 그게 그거겠지만, 시골에 사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나는 변호사의 법률적 판단을 믿는다. 그렇지만 내가 소송에서 이길지 질지, 지면 어느 정도로 질지와 관련한 범위 내에서만 믿어야지, 전반적인 결정은 모두 내가 해야 한다. 소송을 진행해보니, 전반적인 결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변호사의 권유대로 700만 원 받고 합의하게 생겼다. 내가 유학이라도 갔으면, 몇 년 전에 이미 동네가 망했을 것이고, 운이 좋아 아버지가 몸으로 막았더라도 변호사 말 듣고 700만 원쯤 받고 동네가 망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새옹지마’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변호사 말이라고 해서 무작정 다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변호사가 잘못 판단한 것 중 하나는 원고 측(물류창고)이 소형 굴삭기만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포크레인은 초소형, 소형, 중형, 대형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포크레인은 중형 포크레인이다. 폭 3미터 농로에는 중형 포크레인은 진입할 수도 없다. 소형 포크레인은 진입할 수는 있으나 농로 폭이 좁아 매설공사를 할 수 없다. 흙을 파더라도 옆에 쌓아둘 곳이 없어서 쉽게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

업체도 법정에서 큰 소리만 땅땅 쳤지 아무 것도 못하겠으니까 결국 물류창고를 짓기로 했던 논에 다시 농사를 짓기로 했다. 농지에 너무 오래 농사를 안 지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마을 주민에게 임대하여 농사짓게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을 주민이 논을 웃기게 갈아놓았다. 논을 다 갈아놓은 것이 아니라 갈다가 만 것이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





몇 년 동안 농사를 안 지으니 논이 습지 비슷하게 되어서 억새밭이 되었다. 그러면 억새를 제거한 후에 트렉터로 갈아야 하는데, 동네 아저씨가 그런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냅다 트렉터로 갈았고, 그러다가 트렉터 엔진이 나가서 일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억새는 웬만한 풀때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억세다. 농지를 몇 년만 묵혀도 풀을 제거한 후에 트렉터로 갈아야 하는데, 그냥 풀밭도 아니고 억새밭을 냅다 트렉터로 갈아엎으니 트렉터가 멀쩡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억새를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풀을 놓아서 태워 없애는 것인데, 억새는 일반 풀과 비교도 안 되게 화력이 좋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했다가는 본인이 타죽거나 근처에 있는 건축물을 태워 먹는다. 마을의 어떤 겁 없는 아저씨는 억새 무서운 줄도 모르고 불을 놓다가 죽을 뻔해서 억새에 불을 놓지 않고 있다. 한 번 해보고 교훈을 얻었어야 했는데, 그 아저씨는 한 번에 교훈을 못 얻고 여러 번 불을 놓아서 여러 번 죽을 뻔했다. 물류창고부지의 경우, 이 정도 넓이의 억새밭에 불을 놓으면, 그 일대가 불구덩이가 되고 근처 집 두 채가 모두 불타서 집 두 채 값을 물어내야 한다.

물류창고부지의 경우에는, 억새를 모두 베어서 논 한가운데에 쌓아놓은 다음, 논 가장자리를 트렉터로 갈아엎어 진흙뻘로 만들고 나서, 논 한가운데에 쌓아놓은 억새에 불을 붙여 다 태워없애고, 다시 논 한가운데를 트렉터로 갈았어야 했다. 논이 넓으면 논을 격자로 나눈 뒤 여러 군데에 나누어 억새를 쌓아놓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기계가 좋다고 해도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고 무작정 기계로 하면 기계가 작살난다.

대리인이든 기계든, 전적으로 믿지 말고 결국 사람이 손을 대야 일이 된다. 지금껏 회사 한 번 안 다녀보고 사업 한 번 안 해보고 곧 비경제활동인구 40주년을 맞을 내가 이러저러한 일을 겪으면서 다른 어른들이 이미 아는 것을 뒤늦게 알아가고 있다. 남들이 다 아는 것을 뒤늦게라도 알아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굳이 이런 식으로 알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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