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5

물류창고 측 변호사의 개억지



조정 신청이 있어서 지방법원에 다녀왔다. 원고가 민사소송을 걸면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조정 절차를 밟게 되어 있다. 원고와 피고 사이에 조정이 성립하면(타협을 보고 양측이 합의하면) 정식 재판에 들어가지 않고 사건이 마무리된다. 조정은 확정 판정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조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재판을 하게 된다.

나로서는 건설업체와 타협보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건설업체는 허락도 안 받고 남의 사유지에 흄관을 파묻었다가 나에게 들켰으면서도 아버지를 형사 고발하고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게다가 건설업체에서는 우리집에 일방적으로 잘못해놓고도 어떠한 양해나 사과도 않았으며, 대화도 시도하지 않고 곧바로 법적 조치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타협은 무슨 타협인가? 어쨌든 조정 신청이 들어왔으니 법원에 가야 했다. 법원에 도착해서 우리 측 변호사에게서 원고 측의 준비서면을 받았다.

건설업체에서 흄관을 애초에 허가받은 농로가 아니라 우리집 사유지에 묻은 것을 내가 탐지했고, 그 증거를 시청에 제출하여 원상복구 행정명령을 받아냈고, 땅을 파보니 정말로 흄관 여덟 개를 모두 사유지에 묻은 것이 드러났다. 원고 측 잘못이 명백한 사건에서 원고 측 변호사는 의뢰인들을 변호하기 위해 어떤 논리를 동원했을까? 준비서면을 읽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고 측 변호사는 논리를 동원한 것이 아니라 아예 거짓말을 했다. 내경 800mm짜리 흄관 여덟 개를 농로와 사유지의 경계도 아니고 아예 사유지에 묻어버린 일을 두고, 원고 측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변론했다.

피고는 원고들의 공사행위로 인하여 허가부지 외 인근 사유지(◯◯면 ◯◯리 ◯◯◯–◯번지)에 원고들이 흄관이 매설되었음을 확인하고 원고들에게 원상복구 조치를 명한 ◯◯시 자료들을 제출하여 위 1항에서 주장한 피고의 주장이 타당한 것처럼 주장합니다.(2쪽)

그러나 피고가 제출한 을 제8호증-10증 관련 자료는 피고의 불법적인 공사방해 행위와 잦은 민원제기로 원고들의 공사가 2년간이나 중지되고 장마를 지내며 초기 현장에 공사를 위해 묻었던 흄관이 농로의 가장자리 쪽으로 밀려나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에 대해 원고들은 ◯◯시에 이의신청서를 통해 충분히 소명하였습니다.(3쪽)

◯◯면 ◯◯리 창고 부지조성(허가번호: 제2021-◯◯◯호) 공사가 2019년 8월 14일 시작하여 1일 작업 후 2019년 8월 15일 배수로공사 전체 200m 중 20m 정도 흉관을 묻다가 2년 넘게 공사방해로 방치되다보니 농로의 가장자리 쪽으로 밀려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흄관이 밀려난 부분은 공사구간 중 일부로 현재 농로로 사용중인 곳으로 [...]

원고 측 변호사는 우리집에서 공사를 방해하여 공사를 멈추는 바람에 농로에 정상적으로 묻은 흄관이 밖으로 밀려나 사유지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물류창고 부지에 쌓아놓은 흄관은 비를 맞든 눈을 맞든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땅 속에 묻은 흄관은 장마를 거치면서 3미터 이상 이동했다는 말이다. 이 정도면 법원에 준비서면으로 제출할 것이 아니라 학계에 보고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해안선이 평균 2.5미터 정도 동쪽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그 때는 리히터 규모 9.0인 지진이 일어나서 그렇게 된 것이다. 도대체 우리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땅에 묻은 흄관이 3미터나 이동했는가?

원고 측의 변호사는 내가 농로와 사유지의 경계에 나무를 심은 것도 문제 삼는다. 시청에 제출한 이의신청서에는 내가 나의 “토지에 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설치하여 마을길과 연결된 기존의 농로를 좁게 만들어 현재 농로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으니 “위법 행위에 대한 조처를 바”란다고 써있다. 내가 내 땅에 나무를 심었는데 이게 어떻게 위법 행위인가? 내가 농로를 좁힌 것이 아니다. 농로는 원래부터 좁았다. 시청에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은 것은 내가 토지 경계선을 넘지 않않기 때문이다. 변호사씩이나 되어서 이런 것을 위법 행위라고 생각할 리는 없고 원고 측의 명백한 잘못을 변명하기 위해 개억지를 쓴 것이다.

원고 측 변호사의 개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21년 11월에 찍은 사진(1), 2019년 12월에 찍은 사진(2)와 2020년 12월에 찍은 사진(3)을 제시하며 “사면이 이동된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1)번 사진에 있는 동그라미와 (2)번 사진에 있는 동그라미는 전혀 다른 곳이다. (1)번 사진에 있는 동그라미는 흄관 속으로 흙이 들어가 농로에서 지반이 무너진 곳을 가리키고 (2)번 사진에 있는 동그라미는 우리집 배수구를 가리킨다. (3)번 사진의 동그라미는 (2)번 사진의 동그라미와 같은 곳이지만 사진 찍는 각도를 살짝 튼 것뿐이다.

백번 양보해서 사진에 표시한 동그라미가 같은 구멍을 표시한 것이라고 치면, 상황은 더욱 신비로워진다. 2019년에 비탈면에 있던 구멍이 중력을 거슬러 점점 위로 올라와 2021년에는 농로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더욱 신비로운 것은 흄관의 이동 방향과 구멍의 이동 방향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원고 측의 주장이 맞다면, 흄관이 동쪽으로 3미터 가량 움직이는 동안, 비탈면에 있던 구멍은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보통은 시간 순서에 따라 사진을 배열하는데, 원고 측에서는 작정하고 속임수를 쓰려고 시간 순서와 반대로 사진을 배열했다.

변호사 시절의 이재명이 살인사건을 저지른 조카를 심신미약이라면서 변호한 것이 논란이 되었을 때, 어떤 변호사가 방송에서 “원래 변호사들은 그렇게 한다”며 이재명을 옹호해서 더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내가 받은 준비서면의 내용에 비한다면, 오히려 심신미약은 합리적인 변호 전략이다. 멀쩡한 여자를 스토킹하다가 일가족을 죽인 놈이 제정신이겠는가? 심신미약이 아닌지 검토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적어도, 땅에 묻은 흄관이 장마 때문에 3미터나 이동했다는 것보다는 훨씬 그럴듯하다.

물론, 원고 측 변호사가 나쁜 사람이어서 그런 것을 아닐 것이다. 나쁜 놈이 되기 쉽게끔 애초부터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고 나는 믿지만, 꼭 그런 놈만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변호사가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변호사에게 자식이 있다면, 분명히 자식한테는 정직하게 살라고 할 것 같기는 하다. 생각 같아서는 변호사의 자녀를 찾아내서 “너희 엄마가 제◯◯◯법률사무소 조◯옥 변호사니?”라고 하며 준비서면을 보여주고 싶지만, 내가 그렇게 하면 범법자가 될 것이니 그런 짓은 웬만하면 하지 않을 생각이다.

조정 절차는 정해진 시간에 원고 측, 피고 측, 조정위원이 조정실에 모여 각 측의 입장을 확인한 후, 조정위원이 원고 측을 따로 불러 이야기해보고, 다시 피고 측을 따로 불러 이야기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원고 측이 조정실에 들어가서는 무슨 사기를 치는지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조정실 밖에서 우리 측 변호사는 나와 어머니에게 원고 측과의 타협을 권유했다.

변호사는 나에게, 재판을 길게 끌어봐야 큰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사회운동가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 마을을 위해 그러는 것은 알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나서는 것도 아니고 도와주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토지 임대료로 1천만 원 정도와 함께 사과를 받고 소 취하하는 쪽으로 끝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다. 변호사 말이 일리가 있는 것은 맞다. 물류창고 우수관을 사유지에 묻는다고 해서 농지가 크게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우수관이 하수관이 되고 동네가 난장판이 된다고 해도 우리집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며, 동네 사람들은 마을이 원래 평온한 줄 알지 내가 뭘 하는지는 알 바도 아니고 알려준다고 한들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나도 안다. 그렇지만 나는 “저들과 타협은 없다”고 간단히 답했다. 물론, 변호사도 나름대로 우리를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상대방이 1억 1천만 원대의 민사 소송을 건 상황에서 우리가 한 푼도 안 내고 소송에서 완벽하게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1억 1천만 원까지는 아니어도 몇 천만 원이라도 물어낼 위험도 있는데 굳이 그 위험을 감수하며 고생을 해야겠느냐 싶었을 것이다.

나는 변호사에게 물었다. “혹시라도 우리가 깨끗하게 이긴다면, 반대로 저 쪽한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을까요?” 변호사는 웃으면서 답했다. “피해 액수를 산청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하시려구요?” 나도 피해 액수를 산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모르는 묘수가 변호사에게 있을지도 몰라서 그냥 물어본 것이었다. 사실, 우리가 이긴다고 해도 우리 측 변호사비를 원고 측에게 청구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나도 다 안다. 알면서도 진행하는 것이다.

원고 측 면담이 끝나고 우리 측 면담 차례가 되었다. 조정위원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면서 원고 측에서 소를 취하하는 것과 열흘 간 우리 땅을 사용하게 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150만 원을 우리에게 줄 의향이 있음을 전했다. 아버지가 업무방해혐의로 낸 벌금이 150만 원이다. 사과나 유감 표명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조정위원에게 답했다. “150만 원이요? 15억 원을 준다고 해도 합의는 없습니다.”

결국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정위원이 조정절차를 끝내려 할 때 머리카락이 죄다 허연 사람이 끝나기 전에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건설업체 직원인 김◯락이었다. 조정위원이 말하라고 하자 김◯락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사방해 안 하신다는 거죠? 내일부터라고 소형 장비로 공사 다시 시작해도 되는 거죠?”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을 봤나? 소형 장비로는 공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뻔히 아는데, 어디서 협박하는 것인가? 아버지가 공사를 방해했지 나는 단 한 번도 공사를 방해한 적이 없다. 아예 공사를 진행할 수 없게 합법적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공사를 방해한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는 것이다. 한 달에 1천만 원 이상 손해를 보고 있다면서 왜 지금까지 소형 장비로 우수관 공사를 하지 않았겠는가? 소형 장비로 할 수 있는 공사였으면 진작 했을 것이다. 나는 김◯락에게 답했다. “네, 하세요. 작년 초에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도 하셨잖아요.”

집에 오면서 ‘한국이 조금만 덜 법치국가였으면 저들이 깡패나 자객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로 일말의 양심도 없는 놈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법치국가에 살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어디서 이상한 책을 읽은 것인지, 아니면 멀쩡한 책을 이상하게 읽은 것인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무슨 권력이 어쩌네, 감시가 어쩌네, 근대성이 어쩌네 하며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는데, 서울에서 벗어나면 죽거나 뒈지는 줄 알면서 그딴 소리 하는 것을 보면 웃기지도 않는다. 서울에서의 권리 침해라는 것은 기껏해야 윗층에서 콩콩 뛰거나 주차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 정도이며, 이것만 가지고도 사람을 죽이네 살리네 하며 난리치는데, 시골에서는 내 땅으로 중장비가 들어와도 대개는 짹 소리도 못 한다. 개인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 각자의 양심이겠는가, 아니면 CCTV이겠는가?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우정과 환대이겠는가, 아니면 정교한 사법 체계와 촘촘한 경찰력이겠는가?

소형 굴삭기로는 흄관 매설 공사를 할 수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김◯락이 한 말이 신경 쓰여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농로 양 옆으로 사유지에 쇠파이프 30여 개를 박았다. 깊이 안 박고 대충 박아서 해가 지기 전까지 다 박을 수 있었다.

(202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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