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7

이괄의 난과 윤석열의 난



내가 역사학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역사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얄팍한 수준의) 교훈이나 시사점을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태도는 이상해 보인다. 대부분의 역사 연구에서는 그러한 교훈을 얻기 힘들다. 정치사에서는 억지로 그러한 교훈을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왕이 되기 위해 잘난 놈을 어떻게 보내고 못난 놈을 어떻게 제꼈는지 안다면 개인 처세나 조직 운영에 약간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역사학에는 정치사 말고도 분야가 너무 많다. 문화사에서 무슨 교훈을 얻을 것이며, 경제사에서 무슨 시사점을 얻을 것인가? 로마 사람들이 기생충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에서 도대체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구충제를 잘 먹어야 한다는 것?

라디오 프로그램 같은 데서 시사를 역사로 풀어낸다고 하는 코너만 봐도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현실 정치에 어떻게든 한마디 하고 싶은 사람들이 출연해서 역사 같은 소리를 하는 모양인데, 그런 소리 하는 사람 치고 역사를 제대로 살펴보거나 현실 정치에 통찰을 던져주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왕조 시대 권력 다툼이나 가지고 와서 오늘날의 정치를 논하니 권력 다툼 말고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이괄의 난이 될 윤석열의 난”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다. 민주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자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영상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괄의 난과 윤석열의 난이 어떤 유사점이 있나? 둘의 공통점이라고는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고 오만한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그런데 윤석열이 이괄이면 모든 게 이상해진다. 문재인은 인조가 되고, 촛불집회는 인조반정이 되고, 박근혜는 광해군이 되고, 최순실은 김개시가 되고, 김기춘은 이이첨이 된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윤석열을 욕하는 데 눈이 뒤집혀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던 것인가?

역사 비-전문가나 썰쟁이나 사기꾼이 역사에서 어떻게든 교훈을 얻어내려고 역사를 자기 편의대로 말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괄의 난이 될 윤석열의 난”에서 이괄을 윤석열에 빗댄 사람은 놀랍게도 현직 사학과 교수다. 그 교수가 윤석열한테 쌍욕하는 영상을 찍든 윤석열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칼로 찌르든 내 관심사가 알 바가 아니기는 한데, 코 묻은 돈 털어먹으려는 사교육 강사도 아니고 현직 사학과 교수가 왜 그러는지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현직 교수가 그런 식으로 역사를 대하면 역사 무식자들이 역사학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가뜩이나 역사도 모르는 놈들이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염병들을 하는 판인데 도대체 사학과 교수가 뭐 하는 짓인가? 추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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