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4

안동 <유교랜드> 탐방기



내가 안동 <유교랜드>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올해 8월부터였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김영민 교수가 <한국일보>에 쓴 칼럼 “만들어진 전통으로서 유교, 타율적 도덕으로 이 땅을 구한다?”을 읽고서 <유교랜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유교랜드>에 가야겠다고 생각만 하던 어느 날, 학부 동기가 국내 여행을 제안했다. 후보지로 강릉, 안동, 여수가 나와서 나는 적극적으로 안동을 밀었고, 결국 나를 포함한 세 명은 안동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부를 다녔다. 유학의 본산이라고 주장하는 학교를 다니며, 기독교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채플을 듣듯이 필수 교양과목으로 <유학사상>을 들었다. <유학사상>을 들은 세 사람이 <유교랜드>를 방문하니 얼마나 감격이 차올랐겠는가?







<유교랜드> 건물에 들어섰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매표대 앞에 섰는데 등 뒤로 쿵짝쿵짝 하는, 촌스럽고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여기는 <유교랜드>인데 왜 이런 음악이 나오지? 표를 끊고 뒤돌아서서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자마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부에 들어서서 맨 처음 보게 되는 것은 비행 청소년들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되는 마네킹이다. 그 맞은편에는 공장에서 매연을 내뿜는 영상이 나오고, 전시관 가운데는 스포츠카가 있다. 비행 청소년, 스포츠카, 환경오염, 이 셋이 왜 한 공간에 있는가? 힌트는 환경오염을 보여주는 벽의 구석에 붙은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에 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1991년에 일어난 일이다. 환경오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건을 말해보라고 하면, 대체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라니. 유치원 때의 기억이 스믈스믈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집은 당구장을 했는데, 아버지가 당구장 출입문에 낙동강 폐놀 방류 사건 뭐시기 하는 문구와 두산 제품 불매하자는 문구를 종이에 써서 붙인 적이 있었다. 30년 전 기억이 떠오르면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 방에 놓인 것들은 모두 30년 전에 사회 문제라고 언론에 나왔던 것들이다. 스포츠카는 오렌지족과 야타족을 가리킨다. 문란한 성 풍속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 스포츠카로 대신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골프가 확산되는 것도 일종의 과소비이자 풍기문란 비슷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골프 의류와 장비는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30년 전 사회 문제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상기하게 되니 반갑기는 한데, 벽 곳곳에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인가”,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묻는 형광 글씨가 있는 것을 보니 혼란스러웠다. 2020년에 1990년대 초반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지금 행복한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으니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 멀리 “유교, 그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서”라고 쓴 형광 글씨가 있고 그 밑으로는 시간의 터널처럼 보이는 터널이 있는데, 터널 입구에 맨 앞에는 “2002”라고 써 있다. 분명히 지금 본 게 1990년대인데 다시 2002년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관람객들이 시간 여행을 한다는 기분이 들도록 일부러 시점들을 어긋나게 배치해서 지금이 언제인지 헷갈리도록 한 것인가? 어쨌거나 그렇게 터널을 지나가면 대동마을이 나오고 주인공인 동이와 동이 가족들이 보인다.







대동마을에는 눈에 띄는 이상한 점이 있다. 여자가 거의 안 보인다는 것이다. “만민이 어우러지는 세상을 ‘대동’이라고 한다”는 대동마을인데 아들, 손자, 삼촌, 아버지, 할아버지만 있고 여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극단적 남초 사회가 대동 사회라니 그들에게 뭔가 말 못 할 슬픈 사연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다. <유교랜드>에는 여자가 딱 두 번 나온다.

하나는 2층 대동마을에서 보여주는 영상이다. 관람객들을 환영하고 대동마을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는 영상인데 여기서 여자들은 늦기 전에 씨 뿌리러 가야 한다면서 서둘러 밭에 가버리고 이후 내내 남자들만 나온다. 영상에서는 미래에서 손님들이 왔다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동생을 불러서 손님들을 맞는다. 어머니, 고모, 이모, 여동생은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남자들만 잔뜩 나와서 예의가 어떻고 인륜이 어떻고 요즈음 세상이 어떻고 인의예지신이 어떻고 하는 말을 한다.






다른 하나는 “조선의 여성 선비”를 소개하는 곳이다. 여성 선비? 선비는 일단 남성이라는 말이다. 선비와 여성 선비의 관계는 마치 깡패와 여자 깡패와 비슷해 보인다. 하여간, <유교랜드>에서는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행하여 인품을 갈고 닦는데 어찌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한다. 그렇게 여성 선비들이 했던 일이란 무엇인가? 소혜왕후가 『내훈』을 짓고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이자 훌륭한 예술가였고, 허난설헌이 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장계향이 『음식다미방』이라는 요리책을 남긴 것이다. 남자들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할 동안 여자들은 남편 뒷바라지 잘 했다고 선비라고 쳐주는 것이다.





여성이 이렇게 딱 두 번 등장하는 것을 보고 같이 간 일행이 이렇게 말했다. “이야-, 이게 <유교랜드>야 <한남랜드>야?” 참고로, 같이 간 두 명은 모두 남자다.

물론, <유교랜드>에 등장하는 인물이 거의 다 남자인 것은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아니다. 유교 사회에서 여성이 긍정적으로 등장하는 사례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여성이라고 하면 뭐가 떠오를까? 우선, ‘삼종지도’가 떠오른다. 삼종지도를 여성의 덕목이라고 하면 욕먹을 것 같으니 뺀다. ‘칠거지악’이 떠오른다. 칠거지악도 넣으면 안 될 것 같다. 『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여자와 소인만은 다루기가 힘들다.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하게 된다”는 구절을 소개해도 안 될 것 같다. 이것도 뺀다. 그렇게 21세기에 맞게 이것도 빼고 저것도 빼니 남는 것이라고는 『내훈』, 현모양처, 예술가, 요리책만 남는다. 어떻게든 유교에서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애쓴, 기획자의 고뇌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유교랜드>라는 이름도 상당히 고심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름은 <유교랜드>이지만 거기서 전시하는 것은 대부분 한국 유교에서 비롯된 몇 가지 피상적인 것들이다. 이건 초대 교회 없고 중세 교회 없고 종교개혁 없고, 예수님과 선교사와 한국 개신교 100년의 일부만 전시해놓고 <기독교랜드>라고 이름 붙인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선비랜드>라고 하면 대놓고 한남랜드 만들겠다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나름대로 성-중립적인 표현을 하려고 <유교랜드>라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유교랜드>는 “3대가 함께 즐기는 유교문화 체험 테마파크”를 표방한다. 3대가 함께 즐길만한 유교문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촌수와 호칭을 배우고 확인하는 퀴즈를 푼다. 그에 해당하는 가족의 이름을 입력하면 조악한 족보가 나온다. 천자문 배우기에서는 기초 한자 일곱 개를 입력하고 끝난다. 책거리할 때의 잔치상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거기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서삼경 익히기에서도 겉핥기의 겉핥기 정도 되는 내용이 나온다. 장원급제 포토존이 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여 레이저 포인터로 된 게임을 할 수 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에 따라 제사상에 음식을 위치대로 올려놓을 수 있다. 가훈 짓기도 할 수 있다.













<유교랜드>의 유교문화 체험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현재에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촌수와 호칭은 서열을 매기고 구분 짓는 활동이다. 넓게 보면, 학번에 따라 말을 놓으라마라 하고 OT 같은 데 가서 술 먹다가 “내가 재수해서 나이가 한 살 많은데 같이 입학했다고 어린놈들이 나한테 말을 놓아요” 하면서 쳐우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하기는 하는데 소수만 하는 활동이다. 천자문 익히기, 사서삼경 익히기 등이다. 실제로도 그런 활동은 소수만 하는 만큼 <유교랜드>에서도 아주 피상적으로만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아무도 안 하는 활동이다. 과거 체험이라든지, 의병 체험이라든지, 장원급제 포토존 하는 것들이다.

첫 번째 것은 해봤자 시시한 것이며, 두 번째 것은 대부분 하지도 못하고 해봤자 재미도 없을 것이며, 세 번째 것은 아무도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 누구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결국, 한국에서 유교 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명에서 유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학자들이 연구할 일이다. 그것과 별개로, 21세기 한국 사람들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결국 족보 따지고, 촌수 따지고, 가훈 짓고, 제사상 잘 차리는 것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영상물에서도 엿보인다. “인의와 예지의 도깨비 나라”는 어른 말을 안 들으면 도깨비가 아이를 혼내주는 이야기이고, 심청이 이야기는 오늘날로 따지면 아버지가 능력도 안 되면서 신용 대출 받아서 자식이 신체 포기각서 쓰고 팔려가게 하는 이야기이다. 『삼강행실도』나 『오륜행실도』도 아니고 그나마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 이 정도라는 것이다. 이는 노신이 「광인일기」에서 말한 것처럼 오늘날 한국에서 유교가 “사람을 잡아먹는 예교(禮敎)”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유교랜드>에는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운영해서는 적자 폭을 메울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유교랜드>를 활용할 수 있을까? 아마도 세 가지 활용 방안이 가능할 것이다.

첫 번째 활용방안은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세상 즐거울 일 없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치료 목적으로 관람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냥 관람하게 하면 증세가 나빠질 수 있으니 가이드 역할을 할 사람과 함께 가야 할 것이다. 나도 일행과 관람 내내 웃으며 돌아다녔다.

두 번째 활용방안은 외국 학자들이 한국에 학술대회 등으로 들렀을 때 관광 코스로 만드는 것이다. 학술대회 끝나고 외국인 학자들한테 경복궁이나 보여주는 것이 고작인데, 경복궁은 현대 한국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유교랜드>라면 어떨까? 사회학자나 인류학자가 특히 관심을 보일 것이다.

세 번째 활용방안은 전통적 구습을 탈피하는 교육 장소로 활용하는 것이다. 전교조 등과 제휴를 맺고 학교 소풍이나 수련회를 <유교랜드>로 오게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학생들의 눈에 유교적 구습이 너무도 우스운 것으로 보일 것이다. 유교 경전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어쨌든 과거를 그리워하는 유교 꼰대들이 반동적인 행태를 보이더라도, <유교랜드>를 다녀간 학생들은 그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거나 분노하는 대신 웃으면서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세대 간의 갈등이 완화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유교랜드>를 짓는 데만 430억 원이나 들었고 매년 10억 원이나 되는 적자가 나고 있다. 이를 두고 아까운 혈세만 축내고 지역의 애물단지가 되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니다. <유교랜드>는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이며 한국은 어떤 곳이며 기성세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지를 과장되지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며, 430억 원이나 들여서 테마파크를 만들어도 제대로 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유교적 구습이 오늘날 힘을 잃었음을 드러내는 곳이다. 지난 세대는 유교적 구습에 고통받았지만 새로운 세대는 웃으면서 과거와 작별할 수 있음을 <유교랜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유교랜드>를 짓는 데 들어간 430억 원과 매년 발생하는 10억 원의 적자는 그리 큰 비용이 아닐지도 모른다.







(20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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