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5

털복숭이의 가출



화천이가 또 새끼를 낳았다. 털복숭이는 화천이가 출산할 때마다 화천이와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약간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잠시 지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화천이와 새끼들이 현관문 근처에 있었는데, 털복숭이는 현관문에서 멀리 떨어진 창고에서 왔다 갔다 하더니 집 근처에서 보이지 않았다. 아직 새끼들은 눈도 뜨지 않았고 화천이도 털복숭이를 쫓아내지 않았는데 털복숭이가 알아서 어디론가 간 것이다.

며칠 뒤 집에서 약간 떨어진 폐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털복숭이였다. 폐가 대문 위에 올라가서 우리 집 식구들이 멀리서 보일 때마다 울었다. 처음에는 털복숭이가 거기 있나보다 하고 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갈수록 울음소리가 애절해졌다. 그냥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고 뻔히 보이는 곳에 올라가서 그렇게 울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고양이들이 높은 데 올라가기는 하는데 내려오지는 못해서 119 구급대가 출동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쩌면 구조 요청일지도 몰라서, 나와 어머니는 사다리를 들고 폐가에 갔다.

사다리를 타고 폐가 대문 위에 올라갔다. 대문 위에는 장독 두세 개를 놓을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털복숭이를 끌어안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대문 위에 올라가서 털복숭이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털복숭이는 내 손을 피해서 슬금슬금 구석으로 가더니 지붕 몇 개를 가볍게 뛰어 건너고는 땅바닥으로 쉽게 내려갔다. 나는 왜 남의 집 대문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인가. 이제는 내가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 더 문제였다.

사다리에서 내려왔을 때 털복숭이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사다리를 들고 집에 가니 온몸에 시커먼 것을 묻히고 거지꼴이 된 털복숭이가 현관문 앞에 있었다. 털복숭이는 화천이와 머리를 비비더니 언제 집에 나갔었냐는 듯이 밥그릇에 있는 사료를 먹었다. 털복숭이는 왜 집을 나갔으며, 왜 그렇게 식구들을 보며 구슬프게 울었던 것인가. 식구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고양이의 지능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그런 의도였다고 단정하지는 못하겠다.

(202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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