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1

포퍼 대 아들러



칼 포퍼는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에서 사이비 과학의 대표적인 사례로 마르크스 역사 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지목한다. 나는 이 세 가지를 “포퍼의 사이비 과학 3대장”이라고 부르는데, 물론 학계에서는 이런 명명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과학철학에서 구획 문제를 논할 때 사이비 과학의 대표적인 사례로 드는 것은 점성술인데, 포퍼는 왜 굳이 그 세 가지를 사례로 들었을까? 이는 포퍼의 개인 경험과 당시 상황과 관련된다. 『추측과 논박』에서 포퍼가 사이비 과학을 언급한 부분은 원래 1953년에 한 강연회의 강연문의 일부분이었다. 포퍼는 자신이 대학에 입학하던 1919년의 어수선한 오스트리아의 상황을 언급하며 강연을 시작한다.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사이비 과학 3대장이 잘 나간 반면, 그 해 에딩턴의 관측이 있기 전까지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믿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고 한다.

포퍼가 지목했던 사이비 과학 3대장은 오늘날 학문의 영역에서는 거의 힘을 잃은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아들러 심리학은 최근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4년 말에 출간된 『미움받을 용기』는 51주 연속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1백만 권 이상 팔렸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 책의 열풍을 두고 그 책의 내용만큼이나 알쏭달쏭한 소리를 했는데, 1919년의 어수선한 오스트리아의 상황 같은 것을 언급한 언론사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 그 책의 열풍을 두고 “왜 한국인들은 일본 철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는 기사를 내보내던 신문사도 있었다.

사실, 포퍼는 아들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아들러를 우연히 개인적으로 알게 된 포퍼는, 아들러가 사회지도 상담소를 차리고 비엔나 노동 계급의 자녀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회사업을 하는 데 동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기 포퍼는 아들러 이론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아들러의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떠한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이론의 미덕이 아니라 악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포퍼는 아들러와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아들러와 관련하여 나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1919년에 아들러의 이론에 특히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를 그에게 보고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아들러는 그 아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등감에 관한 자신의 이론으로 그 사례를 분석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약간 충격을 받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천 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에”가 그의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이번까지 합쳐서, 당신의 경험은 천 하고도 한 번째가 되겠군요.”(79쪽)


아들러 이론의 추가적인 입증 사례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이전 경험에 비추어 해석된 것에 불과하며, 그러한 임상 관찰이 입증하는 것이라고는 어떤 이론이 그러한 사례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뿐이라고 포퍼는 말한다. 『미움받을 용기』를 진지하게 읽는 사람에게 포퍼의 이러한 주장을 전달하려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미움받을 용기』가 100만 부 이상 팔리고 곧바로 『미움받을 용기2』가 출간되는 동안 『추측과 논박1』은 절판이 되었다. 현재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추측과 논박2』뿐이다.

* 참고 문헌

칼 포퍼, 『추측과 논박1』, 이한구 옮김 (민음사, 2001).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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