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3

화제의 명강의에 대한 감상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들어갈 때마다 “tvN 화제의 명강의” 어쩌구 하는 광고가 계속 뜬다. 어떤 독문학자가 쓴 책에 관한 광고다. 목차에 따르면, 그 책은 한국과 독일의 사회, 정치, 교육 등을 온갖 것을 다룬다고 한다. 독문학자가 그런 온갖 주제를 다루는데 어떻게 화제의 명강의가 될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때마침, 아버지가 어떻게 알았는지 그 교수의 강의를 보라면서 식구들을 들볶았다. 나의 아버지처럼 안목 없는 분이 그런 강의에 꽂혔다는 것은 그 강의에 별 내용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강의 몇 개를 찾아서 대충 보았고, 역시나 별 내용은 없었다. 어머니는 강의를 얼핏 보고 “참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명강의다, 감명 깊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지식이 증가했다거나 더 나은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최근에 한 어떤 인터뷰에서 화제의 명강의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독일도 우리와 비슷했지만 68운동 무렵에 바뀐 거예요. [...] 시키는 대로 외워서 그대로 암송하는 학생이야말로 파시즘적 교육의 이상이자 파시즘의 신민이에요. 한국인들의 모습이 바로 그거 아녜요? SKY로 대표되는 한국의 최우등생들이 대접받으면서 양성된 후 만들어나간 세상이 바로 지금의 지옥 같은 모습이에요. [...] 우병우, 조윤선, 김기춘 등, 소위 서울법대로 대표되는 한국 교육 제도의 최상품들이 한 짓거리를 봐요. 한국 교육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산증인들이에요. 이런 것을 개혁해야만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어요.”
  
이런 말은 다음과 같이 정반대로 이야기해도 동등한 설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내뱉어도 존중해주는 교육 풍토야말로 도덕적 무정부상태를 조장하고 사회적 가치를 불신하게 만드는 거예요. 오늘날 한국 학생들의 모습이 바로 그런 거 아니에요? 일베나 하고 여성을 비하하고 5.18이 폭동이라고 하는 거 보세요. n번방 박사 조주빈은 창의성, 다양성 타령이나 하던 한국 교육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산증인이에요. 김근태, 박종철, 이한열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바꾸어 말한 것이 개소리인 것 같은가? 어차피 원래의 인터뷰 내용도 아무 근거 없이 주장하고 싶은 내용을 주장했을 뿐이다. 근거 없이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은 둘 다 다르지 않다.
  
독문학자가 독일의 사회, 정치, 교육 등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 대해 말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단정적으로 말하는지 신기했다. 남몰래 사회과학을 공부했을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저렇게 근거는 하나도 없이 주장만 하는 것인가. 사실, 독문학자가 독일 정치에 대해 무슨 강연을 한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다. 국문학자가 한국 정치나 사회나 교육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그런데 이미 그러고 있었다.
  
내가 신문을 따로 찾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게 되는 칼럼 중에서 문학 쪽 종사자들이 쓰는 칼럼 중 상당수는 문제가 있는 글이었다. 아무 내용 없이 하나마나한 소리나 하거나, 간장 선생처럼 무슨 사안이든 똑같은 이야기나 하거나, 근거 없이 아무 말이나 한다. 꼭 『삼국지연의』에 심취한 아저씨들이 전쟁에 관하여 논하는 것 같다. 나본과 모본의 차이점을 알든 말든, 『삼국지평화』가 연의의 성립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든 말든, 그래서 그들이 전쟁에 대해 뭘 아느냐는 말이다. 그런 소설을 많이 읽다 보면 뭔가 고대 중국 전쟁에 대한 지식이 생긴 것 같은 착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봤자 실제 전쟁은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아저씨들이 전쟁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이 전략을 아는가, 전술을 아는가, 전투를 아는가, 보급을 아는가?
  
(물론, 조선 후기 문학을 전공한 선생님이 조선 후기 역사도 연구하다가 유사-역사학자를 이겨버린 일도 있다. 청대 소품문 연구하다가 고증학에도 손대다가 논어 주석서를 낸 선생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인접 분야에 한 말씀하셔도 되는데 말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차라리 <간장 한 종지>처럼 약간의 문학성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다. <간장 한 종지>에는 찌질한 중년 남성의 내면을 엿볼 수라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문학 종사자들이 무분별하게 쓰는 칼럼들에는 그러한 문학성도 없다. 살림도 어려운 신문사들이 왜 그런 글에 지면을 할애하는지 모르겠다.
  
한국 문학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 문학 걱정이나 할 일이지 왜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에너지를 투입하는가? 그것이 그들의 선량한 마음 때문이라면, 우리는 그들이 아무 것에나 아무 말이나 해서 사회적 비용을 높이지 않게끔, 그리고 그들이 본의 아니게 그들과 관련 분야의 사회적 위신을 떨어뜨리지 않게끔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실력 있는 사회과학자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서 칼럼도 쓰고 전문가 인터뷰도 하고 자문도 해서, 대중들에게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
  
사회과학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비-전문가들의 어쭙잖은 의견을 비판하고 물리치자는 것이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비-전문가들이 어쭙잖은 의견을 내세우고자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끔 하자는 것이다. 의욕이 꺾이면 우울감이 오지만 아예 처음부터 생각 자체가 안 들면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번뇌에 시달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연구에 열중할 수 있게끔,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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