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7

2020년 총선에 대한 감상

    

동료 대학원생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선거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 대학원생이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3년 전 내가 했던 말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3년 전에 한 말이라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는데, 동료 대학원생의 입을 통해 내가 했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니, 내가 한 말이지만 맞는 말이었다. 말을 하도 많이 하다보면 그 중에 어쩌다 맞는 말이 나오는 법이다.

  

201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났을 때였다. 그 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냐 하면, “민자당 계열의 정당은 이제 쇠락하는 것밖에 안 남았고, 민주당이 헛짓거리를 하더라도 민자당 계열의 정당들은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 말에 동료 대학원생은 그래도 그 동안 한 것이 있으니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나는 정당들 내부 사정은 모르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지난 대선 때 일어난 일 중 가장 인상 깊은 사건은 전직 기무사령부 지휘관 20여 명이 민주당과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한 것이었다. 이게 왜 중요한 사건이냐 하면, 한국 사회가 비-가역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가장 보수적인 집단은 군대일 것이고 그 중에서도 핵심은 정보기관일 것인데, 정보기관의 전직 지휘관들이 민주당 지지 선언을 했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이미 상당 부분 민주당 쪽으로 돌아섰음을 의미한다고 나는 파악했다. 정당들의 승부는 결국 우수한 인적 자원을 어느 정당이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있을 텐데, 이제 민자당 계열 정당들은 민주당보다 인적 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으니, 설사 기존 조직이 촘촘하게 남아있더라도 결국은 점점 시들어 죽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근거였다.

  

두 번째 근거는 정당 내부에 관한 것이었다. 민주당은 당에서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이겼다. 자유한국당은 덜 이상한 사람들이 당을 나가고 더 이상한 사람들이 당에 남았으니, 선거에서 진 후 자중지란이 일어나 있는 자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것이고 이 때문에 새로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데도 곤란을 겪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3년이 지났다. 여전히 나는 정당들의 내부 사정은 모른다. 다만, 외견상의 모습으로 추정하건대, 인적 자원의 질이나 양의 차이는 더 커진 것 같다. 동급 스펙 보유자들을 봐도, 스펙이 높은 쪽이나 낮은 쪽이나 민주당 쪽이 더 많은 인적 자원을 새로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당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과 선을 긋고도 아무 문제없이 선거를 진행했는데, 미래통합당은 있는 대로 닥닥 긁어모으고도 선거에 어려움을 겪었다. 미래통합당은 지휘부부터 문제가 있었다. 정당에 가입한 적도 없는 사람들 데려와서 대표를 만들어서 좌충우돌 대모험을 하게 만든다든지, 자기가 있는 정당 이름도 헷갈리는 노인네를 선대위원장으로 모셔 와서 이승만 정권 때의 선거 구호를 사용했다. 이러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여기에 한 가지를 붙이자면, 미래통합당에는 자랑스러운 역사도 없다. 투표 날 아침에 페이스북에서 민주당 선거 영상을 보았다. 웅장한 음악을 깔고 노무현의 연설을 속도감 있게 편집한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보니 ‘작년에 조국 교수 가지고 그렇게 난리 장판을 쳤지만 그래도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의 정당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큰 잘못 없이 임기를 마친다면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정당이 될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누구를 내세울 수 있을까?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직계로 배출한 대통령이 다섯 명인데도 누구를 가지고 선거 영상을 만들 수 있는가? 없다.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김영삼인데, 김영삼을 보고 감명 받을 사람이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정상이라서 김영삼으로는 선거 영상을 만들 수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면, 미래통합당은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는 정당이다. 그렇다면 미래가 있을까? 내가 잘 나가는 사람이고 정치색이 옅은 사람이라면 민주당에 가지 굳이 미래통합당에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정치하고 싶어서 환장났는데 민주당에서 안 부르고 미래통합당에서만 부른다든지, 일베 헤비 유저라든지, 5.18을 북한 간첩들의 폭동이라고 생각한다든지,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든지, 박근혜 탄핵이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지 하는, 기타 사소한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민주당을 두고 미래통합당을 갈 필요가 없다. 경북, 경남, 대구 등에서 출마할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10년이나 20년 뒤에 출마할 사람이라면 또 사정은 다를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하나도 안 중요하다.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래서 정의당에서는 어떻게 인적 자원을 확보할 것인가. 정의당은 관심종자, 전두환 추적자도 부대표가 될 정도로 인적 자원이 부족한 정당이다. 어떻게 해야 금융 전문가를 정의당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환경공학 전문가를 정의당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원전 반대 전문가 말고 원전 전문가를 정의당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밀리터리 매니아 말고 군사 전문가를 정의당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쩌다 그런 사람들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그들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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