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3

코로나19에도 근대성 타령



무식하다고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무슨 일만 터지면 왜 ‘근대성’ 타령을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근대성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또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키길래, 무슨 일만 터지면 “이게 다 근대성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인가? 언론에 소개된 근대성 타령만 놓고 보면, 마치 자기들 주장이 자명한 사실인 것처럼 별다른 추가 설명도 하지 않는다. 현대인의 교양과 같은 것이라서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인가? 어떤 책을 읽어야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까?

우선, ‘데카르트의 이분법적 사고’와 ‘인간중심주의’는 꼭 들어간다. 도대체 데카르트는 무슨 죽을죄를 지어서 무슨 일만 터지면 불명예스럽게 언급되는지 모르겠다. 데카르트가 도대체 뭘 했길래 현대 사회의 환경 오염이나 생태계의 위기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인권 상황이 데카르트 이후에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고, 전-근대의 속박이나 억압이라는 것은 근대 사회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닐 텐데, 왜 현대 사회의 비-인간화 같은 것을 데카르트가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

철학과 학부 출신 동료 대학원생에게 물어보았다. “데카르트가 도대체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나요? 철학과에서 그것과 관련하여 배운 것이 있습니까?” 동료 대학원생은 학부 때 대륙철학 쪽으로 대학원을 가려다가 회심하여 분석철학 쪽으로 온 사람이라 나보다는 그런 쪽 사정에 더 밝다. 그렇지만 동료 대학원생은 이렇게 답했다. “아유, 철학과에서 그런 소리하면 혼나요.” 동료 대학원생도 데카르트가 무슨 죄를 지어서 현대 문명의 온갖 죄악을 혼자 떠맡는지는 알지 못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도 근대성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들었다.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의 실험실에서 흘린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근대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인수공통감염병은 신석기 시대 이후 인류에게 늘 있었던 것이다. 이전 사회에 비한다면 오늘날은 야생 동물을 훨씬 덜 잡아먹으니 박쥐 쳐먹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것을 가지고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이렇다 저렇다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교통로를 따라 전 세계로 질병이 빠르게 퍼진 것을 근대성 때문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심지어 명나라 때도 교역로를 따라 페스트가 퍼지기도 했다. 이는 속도 차이지 근대 사회만의 고유한 무언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도시화가 문제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페스트도 중세 도시를 중심으로 퍼졌으니 이 또한 근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편이나 혼란을 두고 현대 문명의 위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전-근대 시기의 참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재기하는 것을 두고 큰 혼란인 것처럼 말하지만, 전-근대 시기에 전염병이 돌 때는 사재기할 물건도 없고 사재기할 돈도 없이 굶어 죽어갔다. 각국 정부들이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이 정도로 행정력을 동원하는 것은, 불과 100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전-근대 시기에는 원인도 모르고 죽어나갔지만, 이제는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도 불과 몇 주 걸리지도 않는다. 코로나19의 감염자 수와 사망률만 해도 전-근대 시기의 전염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여기서 근대성이 뭘 어쨌다는 것인가?

어떤 생물학 전공자가 코로나19 발병 기간 동안 생물학이나 의학 종사자들이 한 일과 인문학 종사자들이 한 일을 대차대조표 형식으로 비교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로 들었다. 그 게시물을 보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다. 그래도 어떤 게시물일지는 훤히 보인다. 좌변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조치들이 빼곡하게 있을 것이고 우변에는 근대성, 데카르트, 인간중심주의, 이분법, 이런 것들이 드문드문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무식하다고 하더라도 문과로 20년 가까이 산 나도 데카르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는데, 생물학 전공자의 눈에 근대성 타령 하는 사람들이 간장 선생과 달라 보일까? 일만 터지면 근대성 타령 하는 것이나 몸만 아프면 간이 나빠서 그렇다고 하는 것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근대성으로 현대 문명을 진단하는 것이 정말로 유효한 것이라면, 비-전공자를 위한 친절한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문외한들의 눈에, 인문학 한다는 사람들은 가뜩이나 혼란한 틈을 타서 개뻥이나 치는 사람들로 보일 것이다.

* 뱀발(1)

동료 대학원생은 책장에 꽂힌 책 중 하나를 가져와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대체로 자연을 경영하거나 자연력에 항거할 능력이 없을 때, 사람들은 '자연과의 합일'이라는 가치관을 갖는다. 동서양이 마찬가지이다. 서양인들도 고대에는 자연과의 합일을 제1의 가치로 여겼다. 자연을 거역하고서는 살 수가 없는데, 어찌할 것인가.

- 백종현, 『인간이란 무엇인가: 칸트 3대 비판서 특강』 (아카넷, 2018), 56쪽.



* 뱀발(2)

데카르트와 아무 상관이 없는 고대 동아시아 사람들도 열심히 환경을 파괴했다는 자료는 많다. 고대 중국인들이 삼림을 얼마나 파괴했는지를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표도 있다.



- 김석우 (2018), 「위진남북조 시대 환경사에 관한 예비적 고찰」, 『중국고중세사연구』 50권, 63쪽.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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