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4

신안 자은도에 있는 미개장 해수욕장



전남 신안에 ‘자은도’라는 섬이 있다. 예전에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여러 섬을 다리를 연결해서 지금은 목포에서 차로 갈 수 있다.

처음부터 자은도에 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고등학교 동창과 전남 어딘가로 가기로 했다. 나의 외가가 해남이라 해남에 아는 곳이 몇 군데 있어서 해남으로 가기로 했다가, 그러기에 해남은 광주에서도 멀어서 일단 KTX를 타고 목포로 가기로 했고, 이왕 목포에 갔으니 목포에 무엇이 있는지 보기로 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목포에 간 것이다.

지도를 보니 목포에서 다리로 여러 섬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군청이 섬에 있었다. 일단 군청에 가보기로 했다. 신안군청이 있는 압해도는 육지와 압해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KTX 목포역과도 자동차로 20분 거리밖에 안 된다.





신안군청에서는 사방으로 바다가 보인다. 군청 건물 꼭대기층에는 전망대도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보았는데 풍경은 별로 좋지 않았다. 풍경은 버스 정류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군청으로 올라가는 길이 훨씬 더 좋다. 지키는 사람만 없으면 그 곳에서 고기를 구워먹었을지도 모르겠다.





군청에서 마을이 보였고 마을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마을에서는 바다가 어떻게 보일까? 마을로 걸어갔다. 섬인데도 농지가 넓었고 마을 한가운데에 저수지가 있었다. 동네가 예뻤다. 동네를 둘러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다. 저수지를 그냥 두지 말고 군청에서 예산을 끌어와서 저수지 가운데에 정자를 만들고 저수지 양 옆으로 다리를 놓고 저수지에는 연꽃을 심고 폐가를 사들여서 개조한 다음 등등... 언덕에 올라갔다. 언덕을 넘으면 바로 바다가 보일 줄 알았다. 그런데 언덕 위에는 밭이 있었고 밭 둘레로 쳐놓은 철망 울타리가 길을 막았다. 바다가 보이기는 했는데 언덕 건너편에서 바다를 보려면 울타리를 넘어야 했다. 길을 돌아가려니 걷기에는 길이 너무 멀었다. 군청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를 타고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마을을 돌다 보면 바닷가로 가는 길이 나올 줄 알았는데, 언덕 너머로 가는 길은 농로뿐이었다. 농로는 좁아서 자동차가 못 들어간다. 마을이 아니라 아예 섬을 돌다 보면 바닷가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압해도를 돌기 시작했다. 압해도를 돌다 보니 바닷가가 나오기는 나오는데 내가 생각한 예쁜 바닷가가 아니라 선착장 같은 곳이었다. 선착장은 대체로 예쁘지 않다. 섬을 계속 돌다가 다리로 연결된 다른 섬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여러 섬을 돌게 되었다.

신안은 전라남도에서도 외진 곳이고, 자은도는 그러한 신안에서도 외진 곳이다. 한운리는 자은도에서도 외진 곳이다. 내가 간 곳은 한운리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미개장 해수욕장이다. 물도 깨끗하고, 바다도 잔잔하고, 앞에 이름 모를 섬도 있는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치 마을 이름과 같았다. 한운리는 ‘한가할 한(閑)’에 ‘구름 운(雲)’을 쓴다. 해수욕장 개장하기 전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변을 걷다가 날이 저물었다.







목포로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 해변에서 어떤 아저씨를 만났다.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나온 마을 주민이었다. 까만 개는 처음 본 사람을 반기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저씨는 말했다. “저 놈은 항상 지멋대로여. 주인이 불러도 지멋대로여.”

그 아저씨는 우리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하자 그 아저씨는 잠실 옆으로 석촌호수가 있고 석촌호수 옆으로 뭐가 있는데 그 옆에서 살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백화점 등에서 일하다가 정년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하도 사람을 많이 만나서 사람 없는 곳에서 조용히 살려고 외진 동네에서도 외진 곳에 정착한 것이었다.

그 아저씨가 처음 자은도에 들어왔을 때는 해변으로 가는 길도 없었다.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었던 아저씨는 자비를 들여 길을 뚫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그 아저씨가 사람도 없는 외진 곳에 가서 혼자 산다고, 미친 놈이라고 욕했다고 한다. 나도 시골 살아서 시골 정서를 안다. 원래 시골 사람들은 남들이 안 하는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미친 놈이라고 욕한다. 어쨌거나 그 아저씨는 외진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남들이 욕을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조용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안군청에서 사람들이 오더니 그 아저씨가 사는 집 앞을 해수욕장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집 앞이 해수욕장으로 개발된 것이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또 아저씨를 욕했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하려고 저렇게 외진 곳에 살았다고 말이다. 이제는 그 섬에서 영화도 촬영한다고 한다. 그 아저씨는 자기네 염소 두 마리와 닭 세 마리가 영화에 출연한다고 말했다.

조용한 노후를 보내고 싶었던 아저씨의 계획은 물 건너가고 말았지만, 어쨌거나 아저씨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아저씨는 썰물 때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에 걸어갈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목포 낙지가 맛있는 것은 목포/신안 쪽 갯벌이 깊고 고와서 낙지들이 힘을 쓸 필요가 없어서인데, 자은도 바닷가에도 갯벌이 넓고 낙지도 많다고 한다. 신기한 점은 바닷가에서 섬까지 연결된 길은 갯벌이 아니어서 운동화를 신고도 걸어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의 이름은 ‘옥도’이고 지도에도 나오는 섬이라고 아저씨에게 들었다. 이름 없는 섬인 줄 알았는데 이름이 있었다.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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