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9

사과 껍질 깎기



교회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할 때, 사모님이 칼이 이상해서 사과가 잘 안 깎인다고 하셨다. 주방에서 식당으로 반찬을 나르던 나는, 사모님의 말을 듣고 정말 칼이 이상한가 싶어서 그 칼로 사과를 깎아보았다. 칼이 이상하기는 했다. 내가 사과 깎는 모습을 보던 사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와, 사과 껍질을 정말 얇게 깎네요!” 내가 사과 껍질을 얇게 깎기는 한다.

내가 사과 껍질을 얇게 깎기 시작한 것은, 성철 스님이 사과 껍질 두껍게 깎았다고 제자를 꾸중한 이야기를 듣고서부터다. 성철 스님은 제자가 사과 껍질을 종이장처럼 얇게 깎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가 만석꾼이냐며 화를 냈다. 껍질째 먹으면 될 일이지만 그건 또 안 될 일이었다고 한다. 성철 스님 제자 중 사과를 잘 깎는 사람은 하도 껍질을 얇게 깎아서 사과 깎아놓은 것을 멀리서 보면 푸른색 사과처럼 보였다고 한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가 교회에 다니게 될 줄 몰랐다.

내가 20대 후반에 이모댁에 1년 정도 얹혀 살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이모는 손에 힘이 없는지 사과 껍질을 깎는다기보다는 사과 살을 베어낸다고 해도 될 정도로 사과 껍질을 두껍게 깎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이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모는 그렇게 과일을 못 깎으니 나중에 며느리가 사과 껍질 두껍게 깎는다고 트집도 못 잡겠구만.” 그러자 이모가 이렇게 답했다. “그런 걸로 며느리 구박하면 못 써.” 새삼스럽게 맞는 말이었다.

(201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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