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 가던 중 한 강의실에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내가 3학년 2학기까지 공부를 안 했어요.” 칠판을 보니 통계학과 계절학기 수업인 것 같았다. 문 앞에 서 있으면 나를 신경 쓰느라 교수가 하던 이야기를 못 할 것 같았다. 몸을 숨기고 이야기를 엿들었다.
“수학이 그렇게 재미가 없는 거야. 교과서를 보면 한 번 한 말은 다시 하지 않고 넘어가요. 게다가 수학하는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줄여서 쓰고 생략을 많이 해요. 그런 책으로는 도저히 배울 수가 없어요. 교과서는 가르치라고 있는 책인데 그런 책으로는 가르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참고서가 잘 팔리는 거예요. 세상은 참 재미있어요.”
어떤 학문이든 발전할수록 가르쳐야 할 것이 많아지고, 그걸 교과서에 다 넣으면 두꺼워지니까 안 두꺼워지게 하려고 생략과 축약을 많이 하고, 그렇게 되면 배우기가 어려워서 훨씬 두꺼운 참고서가 나온다. 관련 법령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교과서는 꼭 하드커버 한 권으로 만들까. 혹시라도 내가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면 작은 책 여러 권으로 만들어서 들고 다니기도 쉽고 해설도 충분히 많은 교과서를 만들어보고 싶다. 원래 그런 교과서가 있었는데 사라진 건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아서 그런 교과서가 안 나온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런 시도를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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