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9

학술대회 포스터를 보내러 여러 철학과를 검색하다가



학회를 앞두고 다른 학교 철학과 사무실에 연락할 일이 있어서 구글에 여러 학교 철학과를 검색했다. 학교별 철학과 학생들이 쓴 이상한 글이 잔뜩 떴다. 개인 블로그에 써놓은 글은 그렇다고 치자. 왜 동아리를 만들어서 학교 이름, 과 이름 써놓고 정신 나간 소리를 쓰는 것인가. ‘무슨무슨 서포터즈’라고 하면서 학과별 소개하는 사이트도 몇 개 있었는데 그런 사이트에서 철학과 홍보하는 학생들도 여지없이 다 이상한 글을 써놓았다. 분명히 학교마다 정상적인 학생들이 있고 똑똑한 학생도 있는데, 왜 철학과 홍보는 미친 놈들이 하는 것인가. 왜 미친 놈들은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사교적인가.

글에 드러나는 미친 패턴이 획기적이거나, 이 정도면 혁신이라고 할 만하다든지 하면 또 모르겠다. 그러한 패턴이 획기적이어서 이 정도면 현대 예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싶으면 그 사람에게 경의를 표할 마음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은 거의 없고 죄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일단, “삶과 유리되지 않는 학문”이라는 말은 꼭 들어간다. 반대로 물어보자. 어떤 학문이 삶과 유리된 학문인가? F=ma가 삶과 유리되었나, 필립스 곡선이 삶과 유리되었나? 그래놓고 철학책도 아니고 소설책에 나오는 문구를 써놓는다. “실천” 같은 소리도 꼭 들어간다. 뭘 실천하겠다는 것인가. 아, 후견주의(paternalism)에 관한 논문은 법학이나 행정학에서도 많이 나오니까 후견주의에 대한 윤리학적 탐구를 하겠다는 것인가?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게 소설책에 나오는 문구를 또 써놓는다.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철학함을 배워야 한다”는 말도 꼭 들어간다. 무슨 말인가 가만 들여다보면, 책이나 논문 같은 것은 읽기 싫고 요약문이나 보고서도 쓰기 싫고 자기와 상태 비슷한 애들하고 노냥 노닥거리겠다는 말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칸트를 욕보이는가. 도대체 칸트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얼마 전에 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사람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이 다닌 학교에서도 인문대 학과들 통폐합 논의가 있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학생들이 토론회를 열었다고 한다. 인문학에 우호적이었던 그 사람은 자기 전공과 아무 상관없는 토론회에 갔고, 거기서 충격을 받았다. 과가 없어질 수도 있는 판에 참석자들은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이야기를 서로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더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해당 학과들이 통폐합되는 것을 걱정해서 토론회에 갔다가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런 과들은 신입생을 따로 모집하지 말고 공대생들이 그런 학과를 복수전공하도록 권장하거나 강제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렇듯, 미친놈들은 우군을 쫓아낸다.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문제라는 뉴스 보도나 신문 기사가 나오지만, 그런 보도나 기사에도 헛소리가 적지 않게 섞여있어서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데 거의 도움이 안 된다. 철학이나 철학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려면 철학과 출신 미친놈들부터 제어해야 한다. 내가 내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딱히 뭘 할 수 있겠냐만, 그래도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올해는 학술대회 포스터를 열네 군데 학교에 보냈다. 작년까지는 네 군데에만 포스터를 보냈으니, 올해는 작년보다 열 군데에 더 보낸 것이다. 후임 총무간사에게 이야기해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학교에 포스터를 보내라고 할 생각이다.

(20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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