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9

『관내분실』을 읽고

   
나는 원래 소설을 잘 못 읽는다. 가족끼리 갈등을 겪다가 화해하는 종류의 소설은 더더욱 못 읽는다. 억지 신파 소설은 당연히 못 읽고, 문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 높게 평가한다는 소설도 그런 류의 이야기면 못 읽는다. 아마도 성격 때문일 것이다. 내가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소설은 휴식이나 여가로 읽는 것인데, 굳이 남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짜잔한 사건들이나 잡다한 감정 상태 변화를 내가 알아야 할 이유가 있나 싶은 것이다. 가족 갈등이 왕실의 왕위 다툼이나 역모로 이어지는 것이면 모르겠는데, 영화 <사도>처럼 호쾌한 역적질 없이 가족 갈등만 있으면 그런 소설도 못 읽는다.
  
협동과정 자료실 책상에 소설 하나가 놓여있었다. 다음 주 협동과정에서 김초엽 작가와의 만남을 한다고 한다. 책상에 놓인 것은 김초엽 작가가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은 『관내분실』이라는 작품이었다. 나는 원래 소설을 잘 안 읽고 못 읽는데 그래도 읽어보기로 했다. 기말보고서를 써야 하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기말보고서 때 하는 딴짓거리가 제일 재미있다. 해일이 밀려올 때 줍는 조개가 제일 예쁜 법이다.
  
소설의 배경은 사후 마인드 업로딩이 가능한 미래이다. 죽은 사람의 뇌의 시냅스 연결 패턴을 스캔한 다음 마인드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기억과 행동 패턴을 저장하여 마인드 도서관에서 보관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엄마의 기억이 마인드 도서관에서 관내분실 되면서 시작된다.
  
소설에서 엄마가 등장하고 뭔가 따뜻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조짐이 보이자마자, 소설에 대한 흥미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소설 못 읽는 버릇이 또 나온 것이다. 기말보고서도 내가 소설을 진득하게 읽게 만들지는 못했다. 읽다가 아예 덮은 것은 아니고 매우 빠른 속도로 훑었다. ‘아니, 그래서 주인공이 엄마를 이해한다는 거야, 안 한다는 거야’ 하면서. 주인공은 결국 자기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내가 제대로 읽은 거의 유일한 소설은 『삼국지』일 것이다. 그런 것은 재미있다. 으랏차차 하면서 힘 자랑 하고, 고기 먹고 술 먹는 거 자랑하고, 모가지 썩둑썩둑 자르고, 그러면서도 세부 묘사는 별로 없고, 마취 안 하고 외과 수술 받으면서 센 척 하는 류의 이야기 말이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같은 소설도 좋아한다. 딱 거기까지다.
   
아마 흥미를 느끼려면, 소설에 엄마가 나오기는 나오는데 다른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가령, 살인 누명을 쓴 엄마를 구하려고 딸이 엄마를 마인드 스캐닝해서 기억을 복원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정말 살인마였다든지, 엄마가 은행을 털어서 돈을 숨겨놨는데 도주하다 기억을 잃어서 딸이 엄마의 기억을 복원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가족의 소중함 같은 것도 <심슨가족> 식 정도면 받아들일 수 있다. 호머 심슨이 스프링필드를 정말 물리적으로 날려버릴 뻔 했지만 어쨌든 안 날아갔고 가족은 소중하다는 이야기다.
  
가끔씩 느끼지만, 『관내분실』을 읽고 또 느낀 건데, 아무래도 나는 문화인이나 교양인이 되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201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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