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5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동료 대학원생들과 먹고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번역 이야기가 나왔다. 선배 중에 토마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번역한 분이 있다. 출간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약 400부 정도 팔렸다고 한다.
  
동료 대학원생 중 한 명은 어떤 어머니와 아들을 서점에 와서 『순수이성비판』이나 『논리철학논고』 같은 책을 사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아들은 초등학생 정도로 보였는데 그런 아들보고 읽으라고 그런 책을 사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마 이지성 같은 사람들에게 속아서 읽지도 못할 책을 샀던 모양이다. 이게 무슨 사회적인 낭비인가.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어차피 호구들은 언제든지 돈을 갖다버릴 준비가 되어있고 어떻게든 갖다버리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그 돈을 이지성 같은 사람들이 가져가기 전에 괜찮은 사람들이 가져가는 것이 사회정의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읽지도 않을 책을 사거나 읽어도 하나 도움 안 될 책을 살 것이다. 이왕이면 출판될 가치가 있는 책을 사게 만들어 출판될 가치가 없는 책을 덜 사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좋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코페르니쿠스 혁명』 같은 책을 사게 만들 수 있을까?
  
우선 책 홍보부터 바꾸어야 한다. 책에 띠지를 둘러야 한다. 사람들은 토마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모르지만 『과학혁명의 구조』까지는 안다. 그러면 띠지에 이런 문구를 적어야 한다. “『과학혁명의 구조』에 가려진 또 하나의 역작”
  
이거 하나 가지고는 약하다. 최재천 교수를 엮어야 한다. 최재천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안다. 최재천 교수하면 떠오르는 것이 10년 전에는 개미였지만 지금은 통섭이다. 통섭과 토마스 쿤을 엮으면 가능성이 있다. 토마스 쿤은 물리학 박사이면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넘나든 사람이니까 최재천 교수 통섭 강연에 등장할 만한데,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토마스 쿤 이야기는 안 하고 엘 고어와 그의 룸메이트인 토미 리 존스 이야기만 한다. 최재천 교수 강연에 토마스 쿤의 일화가 등장하고 그에게 추천사 하나만 받는다면 판매 부수가 1만 권까지는 어렵지 않게 갈 수도 있다. 최재천 교수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모르겠지만, 그러든 말든 나는 추천사도 미리 정해놓았다. “토마스 쿤의 진면목을 만난다. - 최재천 교수”
  
이러한 홍보 문구가 다른 출판사들의 홍보 문구와 다른 결정적인 지점이 있다. 바로 단 한 마디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출판사들은 어떻게든 책을 팔아먹으려고 거짓말과 허위사실로 뒤범벅된 홍보 문구를 쓰지만, 나의 홍보 문구는 한 마디도 거짓이 없다. 호구들이 흘리는 돈을 주워온다고 해도 최소한의 상도덕은 지켜야 하는 법이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과학혁명의 구조』에 가려진 또 하나의 역작”이다. 역작인 것도 맞고 한국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것도 맞다. “토마스 쿤의 진면목을 만난다”는 문구도 과장 광고가 아니다. 진면목을 만난다고 했지 알아볼 거라고는 안 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 대학원생이 물었다. “그러면 라이헨바하는 어떻게 팔면 좋을까요?” 대학원 선배 중에는 라이헨바하 책을 번역한 분도 있다. 라이헨바하 번역서를 파는 것은 쿤 번역서 파는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다. 그런 어려운 일은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201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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