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2

철학과 신앙의 괴리

     

교회를 다녀서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기독교와 관련된 민감한 주제를 비교적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앞에서도 “저도 교회를 다니지만 창조과학이 어떻게 과학입니까?”라고 말해도 별로 거리낄 것이 없고 듣는 사람들도 대체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비-신자였다면 내가 말하면서도 꺼리는 바가 있었을 것이고 듣는 사람들도 곱게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며칠 전 어떤 할아버지가 나에게 철학과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할아버지가 아는 사람 중에 원래 신앙이 있었으나 과학을 접하고 신앙을 버린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고 하면서 과학철학을 하면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철학도 모르고 과학도 모르는데 가끔씩 사람들이 그런 것을 묻는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그러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일단 철학을 잘한 다음에나 철학과 신앙의 관계를 고민을 하지, 철학도 쥐뿔 못하는 놈이 철학과 신앙의 괴리에서 고민한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면 그걸로 됐지 내가 철학도 못해 죽겠는데 신학적인 고민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예쁘고 똑똑한 여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교회에서 내가 거의 유일한 청년인데,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교회를 매주 꼬박꼬박 나간다. 내가 이 정도 하면 신도 나를 갸륵하게 봐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신이 없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 할아버지는 나에게 철학과 과학과 신앙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세 가지 태도가 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
  
첫 번째는 어떻게든 그 세 가지를 맞추어보려는 태도다. 말을 지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얼마든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맞는데 한 방에 다 창조한 것이 아니고 각 종으로 분화하게끔 창조를 하셨다고 할 수도 있고, 창세기 1장에 하루에 무슨 무슨 작업을 했다고 나오는데 그 하루가 꼭 지구의 태양 공전주기를 가리킨다는 보장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신학자가 하면 되지 굳이 일반인들이 할 일은 아니다. 해봤자 피곤하고 성과도 없고 먹고 사는 데 도움도 안 되고 연구 실적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두 번째는 그냥 그러한 괴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공부를 많이 한 건 아니지만 내가 알기로 최종적인 해결책이 나온 문제는 거의 없거나 매우 적다. 대충 어디까지는 맞는데 해결책이 안 나왔거나 해결책이 곧 나오는 줄 알았는데 어디서 다른 이론이 튀어나와서 그 판을 다시 어질러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마당에 철학과 과학과 신앙이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괴리가 있으면 ‘아, 혼란하다, 혼란해’ 하면서 그냥 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다.
  
세 번째는 학부 때 천주교 신자인 어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창조론이 옳은가, 진화론이 옳은가? 월화수목금토까지는 진화론이 옳고 일요일에는 창조론이 옳다는 것이다. 나는 세 번째 태도를 지지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일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창조론이 옳다는 수정된 버전을 지지한다. 오전 11시에 오전 예배가 시작되는데 예배 시작 30분 전부터 예배당에 앉아있으니까 오전 10시 30분부터 옳고, 내가 오전 예배를 보고 점심까지는 교회에서 먹는데 오후 예배는 안 보고 집에 오니까 오후 1시 30분까지 옳다. 그 선생님이 나처럼 시간까지 구분하지 않고 요일만 구분하는 것은 나보다 신앙심이 깊어서 일요일에는 안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1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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