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3

육아가 미숙한 화천이

     

화천이가 작년 9월 말인가 10월 초에 새끼를 낳았을 때 새끼들은 건강했다. 다섯 마리 중에 한 마리는 비실비실하다가 죽었지만 남은 네 마리는 눈곱 하나 끼지 않고 건강했다. 한 달 정도 지나고 새끼들이 거의 젖을 뗐을 때, 어머니는 새끼들을 다 키울 수 없으니 옆 동네 장날에 고양이 장수한테 새끼 고양이를 주어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며칠 더 데리고 있자고 했다. 그 며칠 사이에 화천이 새끼들은 모두 다 사라졌다. 화천이가 어디에 숨긴 것이다. 화천이는 새끼들을 죄다 숨겨놓고 밥 먹을 때만 혼자 집에 와서 밥을 먹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양이들이 새끼를 숨기는 장소는 빤했다. 우리집 창고, 비닐하우스 근처, 옆집 창고, 이렇게 세 군데 중 하나다. 그런데 화천이는 이 세 군데 중 어디에도 새끼를 숨기지 않았다. 새끼를 숨긴 곳으로 추정한 곳은 집에서 몇 걸음 떨어진 폐가였는데, 풀이 사람 키만큼 자라서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화천이 새끼들이 남의 집에 안 가고 이 동네에서 살게 되나보다 했다.
  
새끼들이 사라진 지 한 달쯤 지났을까. 날씨가 추워지니 화천이가 새끼들을 다시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나간 것은 네 마리였는데 돌아온 것은 세 마리였다. 한 달 전에는 그렇게 털이 뽀송뽀송했는데 집에 돌아온 새끼들은 털이 죄다 개털처럼 부스스했다. 뛰어다녔던 새끼들이 걷는 것도 힘들어했고 눈에는 눈곱을 달고 다녔다. 어머니는 화천이한테 불 같이 화를 내셨다. 데리고 나갈 거면 잘 키울 것이지 다른 집에 가면 사랑받고 잘 먹고 잘 살 애들을 데리고 나가서 다 죽여가지고 왔다고 화천이를 야단치셨다. 두 마리는 곧 죽었고 살아남은 한 마리는 역시나 비실비실했는데 집에 돌아온 지 한참만에야 원기를 회복했다.
  
노란 고양이는 화천이와 비슷한 때 새끼를 배었고 화천이가 새끼를 낳을 즈음 노란 고양이는 다른 곳에 가서 새끼를 낳았다. 어머니는 노란 고양이 새끼들도 젖만 떼면 장날에 고양이 장수한테 넘기려고 했는데 노란 고양이 새끼들은 화천이 새끼들과 달리 사람만 보면 들짐승처럼 도망가서 어머니가 새끼들을 잡을 수 없었다. 노란 고양이는 새끼를 네 마리 낳았고 그 네 마리는 모두 건강하게 자랐다.
  
예전에 화천이와 노란 고양이가 비슷한 시기에 한 집에서 새끼를 낳으면 화천이는 자기 새끼인데도 나 몰라라 하고 노란 고양이가 거의 화천이 새끼까지 키우다시피 했다. 노란 고양이가 화천이 새끼를 키우지 않으니 건강했던 화천이 새끼들은 죄다 죽어버렸다. 노란 고양이는 밖에서 새끼를 키우는 동안은 집에 거의 안 들어왔으니 화천이보다 사료를 많이 먹지도 못했고 화천이만큼 사냥을 잘 하지도 못하니 뭔가를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이다. 노란 고양이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새끼 네 마리 모두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랐다. 화천이는 새끼가 굶어죽는 동안 별 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화천이가 자기 몸만 위하는 놈이라고 했고 나도 한동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화천이가 자기 몸을 위하느라 새끼들을 굶겨 죽인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천이는 젖을 떼자마자 강원도 화천에서 우리집에 데려와서 키웠다. 화천이가 오기 전부터 우리집에 살던 고양이들이나 그 이후에 사는 고양이들이나 모두 자기 어미가 키웠는데 화천이만 사람이 키웠다. 사람 손에서 자랐으니 화천이로서는 새끼를 낳을 줄은 알아도 새끼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육아법을 배울 수도 있고 육아법 책도 읽을 수도 있을 텐데 고양이로서는 본능과 양육에만 의존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양육된 적이 없는 화천이가 새끼를 잘 키운다면 오히려 그게 더 신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2018.02.13.)
     

댓글 없음:

댓글 쓰기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