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an Gabbey, “What Was “Mechanical” about “The Mechanical Philosophy?”, Carla Rita Palmerino and J. M. M. H. Thijssen (eds.), The Reception of the Galilean Science of Motion in Seventeenth-Century Europe (Dordrecht; Boston: Kluwer Academic Publishers, 2004), pp. 11-23. ]
베르나르 퐁트넬은 <세계의 복수성에 관한 대화>(Entretiens sur la pluralité des mondes)에서 자연을 숙고하는 것은 오페라에 가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무대 기술자만 아니라면 어떻게 그것이 산출되었는지 걱정하지 않고 무대 효과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퐁트넬은 우주를 거대한 시계에 비유했는데, 이는 퐁트넬 이전의 관습적인 비유였다. 가베이는 퐁트넬의 문헌이 당시 기계론적 자연 철학과 관련된 쟁점의 실마리가 된다고 보았다.
“기계론적 자연 철학”(the mechanical philosophy)이라는 문구는 무엇을 의미했으며 그것이 가리킨 자연 철학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가? 또한 “기계론적 철학”이 함축한 “역학”(mechanics)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나?
형용사 “기계적”이라는 말은 근대 초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매우 넓은 외포를 가진 말이었다. 한 편으로는 “손으로 하는 작업과 관련된” 것을 어원으로 한다. 손으로 하는 노동, 거래, 기술, 물질적 대상, 물리적 상태, 도구 사용을 포함하는 화학 작용, 실험, 모든 종류의 공예 등을 포함한다. 다른 어원으로는 프랑스어에서 나타나며 “가난한”, “값싼”, “인색한” 등의 뜻을 지닌다. 가베이는 이러한 의미가 데카르트의 <굴절광학>(La Dioptrique)과 <기상학>(Les Météores)에 대한 프로이드먼트(Libert Froidmont)의 비판에서 반영된다고 추정한다. “기계론적” 시대의 수학자들은 기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수학자들이 전통적인 기하학적 추론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구분했으며 그 기준이 되는 것은 “기하학적”이라는 개념이었다.
가베이는 “기계적”이라는 단어에는 “기술적”(technical) 의미가 있었으며, 손이나 기하학과 관련된 뜻의 용례에서는 기술적이라는 의미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본다. <질료와 형상의 기원>(Origin of Forms and Qualities)(1666)에서 보일은 “기계적”이라는 것을 손과 관련된 의미로만 사용했다. 보일은 비트리올의 형상의 “기계적 산출”(mechanical production)은 기계나 역학 법칙과 무관한 것이라고 보았고 뉴튼은 “기계적”이라는 말을 포괄적인 의미에서 손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했다. 이때 뉴튼은 “메커니즘”(mehnism)과 “기계적 연합들”(mechanical coalition)을 “기계론적 철학”에 관한 것으로 사용하지 않고 손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했다.
손과 관련된 의미는 성서와도 관련된다. 알스테드(Johann Heinrich Alsted)는 <백과사전>(Encyclopaedia septem tomis distincta) 6권 서문에서 출애굽기 31장을 인용한다. 이 부분은 브살렐(Bezaleel)과 오홀리압(Oholliab)에게 예배소를 만들라고 하는 내용인데 알스테드의 이 부분에 “기계적 기술과 경작을 폄하하는 것은 신에게서 받은 재능을 폄하하는 것”이라고는 논평을 달아놓는다.
가베이는 언제 어디서 “기계론적 철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는지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소피 룩스는 로버트 보일이 1661년에 처음 영어에 도입했다고 주장한다. 그 단어를 보일이 처음 영어로 쓴 것은 맞지만 그 단어를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쓰인 것은 16660년대 이전이다.
보일 이전에 기계론적 철학과 관련된 사람들 중에ᅟᅳᆫ 르네상스와 17세기 초반의 원자론자들, 입자론자들(corpuscularians) 등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갈릴레오의 <분석>(Il Saggiatore)이다. 이 책에서 갈릴레오는 맛, 냄새, 소리, 촉감을 아리스토텔레스 식 요소에 연결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이를 17세기 초기 행동에서 기계론적 철학의 한 가지 형태로 다룬다. 역사학자들이 뭐라고 하든 갈릴레오는 그것을 “자연 철학”(la filosofia naturale)이라고 서술했다. “자연 철학”은 자연 현상의 원인들과 관련되는데, 이 원인들은 신체의 감각질을 포함하며 기계적 장치들의 반-자연적(contra-natural) 결과나 목적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보일의 혁신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은 “기계론적 철학”의 지시체를 결정하는 어려움을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기계론적 철학은 원자들이나 입자들의 배열과 운동과 관련된 비-질적 용어로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인가? 그 이론에서 핵심 개념은 접촉에 의한 운동인가? 그 개념이 규정하는 이론은 우주와 모든 체계를 기계나 기계 비슷한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그 이론은 수학화된 세계상으로 세계를 규정하는가? 아니면, 자연 법칙이나 운동 법칙의 필연성이 그 이론의 핵심 개념인가? 그 이론은 영혼이나 비-물질적인 것을 탐구 영역에서 배제하는가? 이 물음들은 서로 다른 물음과 구별되지만 “기계론적 철학”이라는 우산에 포함될 수 있는 후보들이다.
보일은 <Some Specimens of an Attempt To make Chymical Experiments Usefull to Illustrate the Notions of the Corpuscular Philosophy> 서문에서 데카르트의 철학과 원자론자나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짝지으며 이들이 현상을 작은 입자들의 다양한 모양과 다양한 움직임으로 설명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가베이는 보일이 “기계론적 철학(또는 가설)”이라는 용어보다 “입자적 철학(또는 가설)”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 것에 주목한다. 이는 두 가지 자연 철학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근본 구성 입자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입자들의 움직임이나 다른 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질료와 형상의 기원>에서 보일은 모든 질적인 것들은 “기계적으로” 산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일 이전에는 이러한 문제를 소금, 황, 수은으로 설명하ᅟᅳᆫ데 보일은 세 원리인 소금, 유황, 수은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 원리인 “양, 크기, 운동”을 내세우며 이 세 가지만으로 수많은 설명 원리를 산출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가베이는 보일이 “기계론적 철학”이라고 부른 것은 이것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것은 “기계론적 철학”이라는 용어가 특수한 종류의 자연 철학에 대한 공적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기계론적 철학”이라는 용어는 1637년 10월 데카르트가 플럼프(Plemp)에게 전달하는 편지에 등장한다. 1637년 9월 13일 편지에서 프로이트몬트는 <굴절광학>과 <기상학>에서 데카르트가 에피쿠로스주의로 빠진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상학>에서 데카르트가 땅, 공기, 물 등의 합성을 설명할 때 “지나치게 기계적”이라고 한다. 데카르트는 프로이트먼트가 무엇에 다하여 불평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후의 편지에서 데카르트는 프로이드먼트를 비난하게 되었다.
타르탈리아(Niccolo Tartaglia), 베네데티(Alssandro Benedetti), 코만디노(Federico Commandino), 귀도발도(Guidobaldo del Monte), 발디(Baldi), 게바라(Guevara)의 논문을 읽었으며 어쩌면 갈릴레오의 논문을 읽었을 수 있는 데카르트에게 역학은 전통적인 과학이었으나 프로이드먼트는 “기계적”이라는 용어를 기술적인 용어로 쓰지 않고 손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했다. 데카르트는 “기계적”이라는 단어가 다의적이며 프로이드먼트가 파악하지 못한 기술적인 의미의 이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철학”이라고 부른 것은 그의 새로운 자연 철학에 대한 이름이 아니고 자기 비하적인 자부심을 통하여 자기 이론의 존재론적 개입과 설명 방법을 옹호한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보일은 입자론 철학의 대안적인 이름으로 공표했다.
갈릴레오의 <분석>에서 “기계론적 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데카르트도 그러한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을 정당화하려면 우리는 프로이드먼트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내 기계론”(mechanica philosophia mea)이라는 말에 호소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언급이 “모양, 크기, 운동을 역학적으로(in mechanics) 생각하라”는 것 정도이기 때문이다. 자연 철학 논문인 <철학의 원리>(Principia Philosopiae mechanicae)에 역학은 등장하지 않고, 호이엔스와 메르센에게 쓴 역학에 관한 짧은 논문에는 자연 철학에 관한 내용이 안 나온다.
데카르트 사상에서 역학과 자연 철학의 관계는 복잡하다. 새로운 물리학을 창조하는 반면 역학의 전통적인 개념을 유지한다. 데카르트는 그러한 원리가 중력 이론 같은 그의 자연 법칙에서 어떻게 도출되는지 보여주지 않았고 그 때문에 데카르트가 구상한 프로그램은 불완전하게 남았다. 데카르트는 세 가지 자연 법칙과 충돌 이론을 제공했지만 왜 낙하체가 그렇게 움직이는지 등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자유 낙하 운동에 대한 정확한 법칙을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데카르트의 세 가지 자연 법칙은 <철학의 원리> 2부에 등장한다. 신의 창조 행위의 불변성을 가정한다면 이러한 법칙들의 참은 운동중인 연장된 것(res extensa)을 포함하는 세계들에서 참이겠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데카르트 버전의 일의 원리는 중력적 소용돌이들(gravitational vortices)에서 움직이는 물체들을 포함하는 이 세계와 가능 세계들에서만 참이다. 데카르트 역학의 궁극적인 원리는 전통적인 역학에 대하여 쓴 저작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데카르트 일의 원리(work principle)의 이러한 측면들은 전통적인 역학과 새로운 역학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을 예화한다. 전통적인 역학에서는 데카르트나 뉴튼의 새로운 자연 철학에서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종류의 법칙이 없다. 데카르트와 뉴튼의 운동 원리는 모든 물체들에 타당한 보편 원리인 반면, 전통적인 역학이 의존하는 가상적인 일의 원리는 일상적인 경험에서 도출한 경험적 일반화이고 중력이 있는 곳에서 운동하는 물체에만 적용된다.
<자연 철학에서의 역학의 유용성>(Usefulness of Mechanical Disciplines to Natural Philosophy)에서 보일은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역학의 본성과 범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고 있음을 말한다. 월리스(John Wallis), 바로우(Isaac Barrow)는 부분적으로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에서 영감을 받았으나 원리적으로는 전통적 역학과 자연 철학의 간극이 적은 갈릴레오의 영향을 받았다. 바로우는 물리학이나 자연 철학의 분과로서 혼합된 수학적 과학들이 많이 있으며 양을 함축하지 않거나 기하학적 정리가 적용되지 않는 분과는 없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월리스는 역학을 “운동의 기하학”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식으로 역학은 자연 세계에 대한 매우 일반적인 수학적 지도가 되었다. 그러나 바로우와 월리스는 자신들의 직관을 로크 식 2차 성질이나 화학적인 혼합물이나 생물학적 세계를 설명하는 데 적용하지 않았다. 바로우가 동물학을 기하학적인 학문으로 포함한 것은 데카르트 식 생리학 프로그램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전통적인 역학적 원리를 인간과 동물의 신체에 적용해서였다.
기계론적 철학의 프로그램적 이상은 어떤 것을 인과적으로 설명하고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거나 해명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하나였다. 중력 하에 있는 물체 궤도를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조수간만, 금성의 측면들 등을 같은 종류의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었다.
(201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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