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전달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보량이다. 전달하려는 정보량이 너무 많으면 듣는 사람이 정신을 놓고, 정보량이 너무 적으면 쓸모없거나 지루해서 상대방이 다른 생각을 한다. 이는 다큐멘터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시청자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다큐멘터리라면 영상과 음성과 문자를 통해 적정 정보량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EBS 다큐프라임> 중에서 교육 분야와 철학 분야는 정말 못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교육 분야는 거의 차량용 블랙박스 수준이다. 학생들 꽁무니 쫓아다니면서 쓸데없는 것이나 촬영해놓고는 다큐멘터리라고 우긴다. 촬영 편수만 여러 편이지 내용도 하나 같이 똑같다. 주입식 교육 그만하고 수업 시간에 토론이나 시키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능력과 창의성이 호랑이 기운처럼 팡팡 솟아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렇게나 주둥이를 나불거리게 냅두었더니 그렇게 된다고? 웬만한 대학에는 교육학과와 심리학과가 있다. 교육공학 전공자나 인지심리 전공자에게 몇 마디만 물어보았어도 그렇게는 안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여러 대학에서 수업 개선 사업을 했고 그와 관련된 자료집을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구글에서 쉽게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일반적인 이론을 제시한 것뿐만 아니라 학과별로 적합한 수업 방식을 연구한 자료들도 많다. 그러한 여러 연구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 중 하나는, 학습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플립트 러닝(Flipped Learning) 같은 학습 방식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으며 오히려 기존의 강의식 수업 방식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절대로 방송이나 신문에 나오지 않는다.
토론식 수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기법을 써야 하는지,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다큐프라임>이 말하는 것처럼, 주입식 교육을 받으면 비판적 사고능력과 창의성이 죽고 자유롭게 주둥이를 털게 하면 그러한 것들이 길러진다는 식의 결론이 나올 수 없다. 그러니 중요한 내용을 다 빼버려야 하고, 얼마 안 되는 내용으로만 다큐멘터리 분량을 채워야 하니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철학 분야는 ‘다큐프라임’이 아니라 ‘드라마프라임’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50분짜리 한 편이 5분짜리 <지식채널e>보다 정보량이 적다. 정보량이 적은데 많은 시간을 때우려니 세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도 5분짜리 단막극으로 만든다. 트롤리 딜레마를 설명하려고 멀리서 아주 천천히 기차가 달려오고, 묶여있는 사람들의 겁에 질린 표정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여주고, 기관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몸을 차창 밖으로 반쯤 꺼내고, 두 갈래인 철로를 보여주는데, 이것들이 모두 다 느린 화면으로 나오고 나레이션도 외국인을 위한 방송인 듯 천천히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는다. 이렇게 해도 분량을 채우기 어려운지 중간 중간에 내용 전개와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장면을 집어넣는다.
철학을 접한 적 없는 시청자를 겨냥해서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니 다큐멘터리를 <텔레토비>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 내용이 산만하고 중언부언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PD든 작가든 자기들도 무엇으로 내용을 채워야 할지 몰라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다큐프라임>에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회에 물음을 던지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고 한다. 괜한 짓 하지 말고 기존의 지식이나 잘 전달했으면 좋겠다.
(20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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