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1

인문학 약장수들의 트라우마

     

인문학 약장수들이 생각보다 많다. 방송에 나오는 제약 회사급 약장수 말고도 짜잔하게 약을 파는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요즈음은 대기업 입사 원서 쓸 때도 인문학이 필요하다면서 취업 시장에서 약을 파는 놈들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어쨌든 수요와 공급이 만나서 별별 시장이 다 만들어지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공부가 잘 안 되는 나는, 공부가 안 되는 김에 약장수 동영상을 하나 다운 받아서 보았다. 어차피 공부도 안 되는 거 업계 동향이나 알아보자 하고 동영상을 본 것이다. 그 동영상에 나온 약장수는 현재 유명 입시 업체에서 잘 나가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본 것은 5년 전에 찍은 동영상 강의였다.
  
그 동영상에서 약장수는 주인이 되는 삶을 사는 게 무엇이냐면서 수강생들을 현혹했다. 건물주가 되면 주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는데 약장수들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가만히 듣다보니 그 강사가 무슨 책 읽고 헛소리 하는지 대번에 감이 왔다. 공부가 안 될 때마다 시중에 유행하는 쓰레기 책을 읽다보니 누가 헛소리를 하면 무슨 책 읽고 그러는지 웬만큼은 안다. 이런 것은 남이 싼 똥을 먹고 자기가 싼 똥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만, 인문대 대학원 나와서 먹고 살 길 막막한 사람이 시장 수요에 따라 똥을 공급하는 것이 뭐 그리 나쁜 짓인가 싶다. 그런데 강의하던 강사는 주인이 되는 삶을 말하다가 가난에 대해 말하고 자기가 가난하게 살던 이야기를 했다. 아, 또 가난뱅이라니.
  
인문학 약장수 중에 왜 그렇게 가난뱅이 출신들이 많은가 모르겠다. 아버지가 자기 명의로 보증을 선 다음 사업을 말아먹어서 억 단위로 빚더미에 오르지 않나, 아무 것도 없이 상경한 하층 노동자 부모 밑에서 학대받으며 성장하지 않나, IMF 때 아버지가 사기당하고 집이 망하고 본인은 비행 청소년으로 자라지 않나, 이번 약장수는 어려서 판자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30대에 부동산 100억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처럼 부유함과 천박함을 동반하면 모르겠는데, 왜 인문학 약장수들은 실존적인 아픔과 인문학을 뒤섞어서 개소리를 하는 건가. 괜히 가슴만 아프게.
  
인문학 약장수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을 때 마음이 안 좋은 것은, 그들이 단지 개소리를 늘어놓아서가 아니다. 트라우마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이상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교회나 절에 가서 소망하는 바를 빌면 또 모르겠는데 그러는 것도 아니고 멀쩡한 책을 읽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나 한다.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철학 책이든 문학 책이든 단지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책밖에 안 되는 것이다. 아픈 사람들이 그러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
   
그냥저냥 사는 보통 사람들이 인문학 약장수들이 하는 소리를 별 의심 없이 믿는 것을 볼 때도 마음이 안 좋다. 솔직히 나는 윤ㅅㅇ 같은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부잣집 멍청한 아들을 보면 약간 짜증나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윤ㅅㅇ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 받고 자란 머리 좋은 아이들은 그런 약장수를 비웃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약장수들이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운전석 앞에 붙여놓은 강아지 인형이 고개를 끄덕이듯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 왜 그런가? 똑똑한 부자에게 똑똑한 자식이 나오고 멍청한 가난뱅이에게 멍청한 자식이 나오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뱅이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것을 보면 마음이 참 안 좋다.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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