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학 수업에서 라투르 논문 발제를 내가 했다. 최악의 발제였다. 나는 발제 직전까지도 내가 읽은 글이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 내가 영어를 못 하는 건 맞는데, 사실 많이 못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글을 이렇게 쓰면 반칙 아닌가 싶을 정도로 라투르는 이해하기 어렵게 글을 썼다. 이상한 비유를 계속 덧붙이며 문장을 길게 만들어놓은 데다, 한 문단을 세 번씩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게 글을 써놓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수업에 참석한 학생 중 한 명을 빼고 모두 논문을 읽고도 논문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 한 명은 그 논문을 읽지 않았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그나마 라투르는 다른 프랑스 철학자보다는 글을 평이하게 쓰는 편이라고 한다. 라투르는 영미권에서는 프랑스 사람처럼 글을 쓴다고 욕을 먹고 프랑스에서는 영미권 사람처럼 글을 쓴다고 욕을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프랑스 사람들은 왜 그렇게 글을 괴상하게 쓰는 것인가. 대학에서 그렇게 글을 쓰라고 배우는 건가. 학부 때 프랑스 공학 논문을 읽은 적이 있는 공대 출신 대학원생은, 프랑스 사람들은 공학 논문도 그런 식으로 괴상하게 쓴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어려워 보이는 글도 자꾸 읽다보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다. 보통은 어려운 글을 자꾸 읽어도 무슨 말인지 계속 몰라서 때려치우는 거고 어려운 것을 여러 번 읽어서 무슨 뜻인지 알게 되는 사람이 선생님처럼 교수가 되는 것인데, 하여간 선생님은 라투르 논문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설명하셨다. 설명을 듣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라투르는 저렇게 좋은 내용을 왜 그렇게 미친놈처럼 써놓았을까?
아는 것도 없고 문장력도 없는 사람들이 영화 잡지에 찍찍 써놓은 영화 평론이나 의식의 흐름대로 써놓은 문학 평론 같은 것들이야 안 읽으면 그만이지만, 학문적으로 성공한 프랑스 사람이 글로 만행을 부리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고통 받게 된다. 영미 철학 논문을 읽다 보면 내가 이러고도 대학원에 올 생각을 했다니 내가 미친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다가 프랑스 사람이 쓴 글을 보면 글 쓴 사람이 미친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글 쓴 사람은 세계적으로 성공했고 나는 한낱 대학원생인데.
발제 하다가 답답해서 인터넷으로 신문 기사를 몇 개 읽었다. 읽은 기사 중 하나는 르노 자동차 사장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자기들은 철학으로 자동차를 만든다고 한 보도였다. 나는 철강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줄 알았는데, 르노 자동차에서는 철학으로 자동차를 만든다고 한다. 하여간 프랑스 놈들은...
* 링크: [경향신문]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은 돈·기술보다 ‘철학’
(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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