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학교에서 고등학생들한테 “철학은 세계의 근본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사전적인 정의를 소개한 다음, 어떤 문제가 철학적인 문제일지 물어보았다. 어떤 학생이 말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같은 거요.”
나는 닭이 먼저라고 하는 학생과 계란이 먼저라고 하는 학생을 나누어 닭파와 계란파 간의 논쟁을 붙일 생각이었다. 학부 때 철학과 수업에서 교수나 강사들이 그런 식으로 수업을 대충 때웠던 것처럼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학생들이 아무도 자기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서 논쟁을 붙이지 못했다. 결국 내가 가능한 답변을 말했다.
내가 해석하기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차이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견해 차이다. 창조론자는 닭이 먼저라고 할 것이다. 신이 6일 동안 만물을 창조한 뒤 하루 쉬었는데 그 때 닭을 만들었다. 계란을 먼저 창조했다면 계란이 부화되지 않을 것이고 부화되었다고 해도 병아리 혼자 생존하기 어렵다. 계란과 닭을 동시에 창조할 수도 있겠지만 신은 불필요한 작업을 하지 않으므로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이 닭만 창조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계란이 먼저라고 할 것이다. 닭이 아니었던 것이 점점 진화해서 닭이 되는 시점, 즉 최초의 닭이 등장하는 시점을 t라고 하고, 아직 닭은 아닌데 닭으로 진화하고 있는 새를 ‘유사 닭’이라고 하자. 또한, 유사 닭이 t-n 시점에 알을 낳고 그 알에서 유사 병아리가 나온다고 하자. t-n 시점의 알은 같은 시점의 어른 유사 닭보다 닭에 더 가깝다. t-n 시점의 알이 어른 유사 닭이 되는 시점을 t-n+1이라고 하자. t-n+1 시점의 유사 닭이 낳은 알은 같은 시점의 어른 유사 닭보다 닭에 더 가깝다. 이 것이 반복된다면 t 시점에 등장하는 것은 어른 유사 닭과 계란이며, 어른 닭은 t+1 시점에 등장한다. 그래서 계란이 닭보다 먼저다.
예전에 내가 목사님한테 닭과 계란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닭을 창조하셨으므로 닭이 먼저라고 하셨다. 생물학자들도 닭도 먼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가 틀린 것 같다. 내가 과학을 잘 몰라서 생물학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 링크: [CNN] Scientists solve chicken and egg riddle
( https://edition.cnn.com/2010/WORLD/europe/07/14/england.chicken.egg.riddle/index.html )
(2017.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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