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4

<시마 석사>에 대한 구상

     

예전에 <빅뱅 이론>에 대항할 만한 시트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빅뱅 이론>의 문과 버전인 <지칭 이론>이 그것인데, 어느 방송국에서도 이런 정신 나간 기획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서 5분 정도 생각하고 접었다.
  
시트콤을 만들려면 방송국이 필요하겠지만 만화는 비교적 적은 인력으로도 만들 수 있다. 대학원 내의 음모와 배신, 암투, 권력투쟁, 그리고 욕정과 질투를 담아낸 만화는 어떨까. 대학원을 배경으로 동아시아 특유의 경쟁적이고 음험한 분위기를 담아서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만화 제목은 <시마 석사>이다. <시마 석사>가 잘 되면 <시마 박사>, <시마 교수> 같은 식으로 시리즈로 만들 수도 있겠다.
  
나는 동료 대학원생에게 <시마 석사>에 대한 구상을 이야기했다. 동료 대학원생은 대학원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배신을 어떤 식으로 그릴 것이냐고 물었다. 사실, 대학원에서 그렇게 음모와 배신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잠깐 생각하다가 나는 대충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시마 석사는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에 입학합니다. 지도교수는 석사 과정 때와 같은 교수죠. 교수는 50대 초반인데 대학원생한테 그렇게 갑질을 해요. 그래서 그 교수의 지도학생들은 대부분 유학을 가거나 대학원을 그만 둡니다. 지도학생이 얼마 없으니 시마 석사가 교수가 시키는 온갖 일을 도맡아 하게 되지요.
  
교수는 시마 석사를 학교에서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서 집안일도 시킵니다. 집에 가서 개밥을 줘라, 고장 난 컴퓨터를 고쳐라 등등. 시마 석사는 계속 교수 집에 가게 되지요.
 
어느 날은 교수가 시마 석사에게 자기 집에 있는 냉장고를 청소하라고 시킵니다. 시마 석사는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생각만 하고 교수 집으로 갑니다. 그렇게 시마 석사가 교수 집에 갔는데 마침 교수 부인이 혼자 있어요. 계속 빈 집에 가서 잔심부름을 했었는데 그 날 마침 부인을 본 거예요.
 
그런데 부인이 아주 젊습니다. 왜냐하면 교수는 교수 임용이 되고 나서 40대 초반에 20대 후반의 미모의 여성과 결혼을 했거든요. 교수가 되면 결혼정보회사 등급이 갑자기 확 높아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시마 석사가 쓱 보니까 두 사람의 사이가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두 사람의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다 교수는 성격도 안 좋고 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이것저것 일도 많이 하고 그러다 보니 건강도 좋지 않습니다. 부인은 30대 후반이고 그래서 한창 원기왕성 할 나이인데 나이 많은 교수는 건강이 안 좋은 거예요.
 
그란 상황에서 30대 후반인 교수 부인이 냉장고 청소하러 온 30대 초반의 시마 석사를 만난 거죠. 그렇게 같이 두 사람이 냉장고 청소를 하다가...”
  
내 이야기를 듣던 동료 대학원생은 “작가로서의 재능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편집자로서의 재능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원에 와서 주변에서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가끔씩 듣는다. 그런데 그런 게 다 철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 관한 것이었다.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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