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 아르바이트로 생명 윤리를 강의했다. 내가 생명 윤리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해달라고 해서 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독서 리더단을 만들 때 원래 취지는 고등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히는 것이라고 한다. 연수 때도 교육감이 그 부분을 강조해서 속으로 ‘이번 기회에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아홉 번쯤 훑어보면 되겠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학교도 고전을 읽히지 않았다. 내가 맡은 학교가 아홉 곳인데 학교마다 요청한 책도 다 달랐고 요구사항도 달랐다. 그렇게 생명 윤리까지 하게 되었다.
생명 윤리의 주제 중에서 인간 복제는 너무 옛날 이야기라서 빼고, 생명의료윤리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 안락사, 낙태, 향상 논쟁을 가지고 세 시간 정도 아르바이트 했다. 내가 향상 논쟁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고 유전공학, 정보공학, 신경약리학, 나노공학 등을 이용하여 정신적・신체적・유전적 기능이 근본적으로 향상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옳은지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다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차피 고등학생 대상으로 하는 거라서 대강 이야기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학생들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고 할 때 인간의 신체를 ‘개선한다’고 하면 이미 가치가 투영된 것 같으니 ‘개조한다’고 해보자. 이게 나쁜가? 이왕 개조하는 거 좋은 형질을 대대손손 누리도록 유전자에 손을 댄다고 해보자. 부작용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이게 그렇게 나쁜가?” 약간 자극적으로 말하려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쌍꺼풀이 없고 외모 개선을 위해 쌍꺼풀 수술을 하고, 또 쌍꺼풀 없는 애를 낳고 쌍꺼풀 수술을 할 텐데, 아예 유전자에 쌍꺼풀이 생기게 해놓으면 안 되나? 다른 부작용이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게 그렇게 나쁜가?” 내가 아르바이트 한 곳은 여고였으나 아무도 나의 이런 발언에 문제 제기하기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곧이어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나는 대머리이고 내가 아들을 낳는다면 내 아들도 대머리가 될 텐데 [...].”
내가 유전자 편집 등을 통한 인간 향상을 찬성해서 그렇게 말을 꺼낸 것은 아니다. 유전자 편집 등이 아무런 부작용을 동반하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이 유전적으로 비슷해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최대한 좋은 상황을 가정했던 것뿐이다. 인간 향상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빈부 격차가 유전자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 정부가 빨갱이라서 모두가 좋은 유전자를 가지게 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는 남는다. 가령, 조류 독감 돌 때 양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인간 집단에서도 벌어질 수도 있다. 철새들은 무리에 조류 독감이 돌아도 몇 마리 기침하고 몇 마리 죽고 끝인데 양계장에서는 닭이 몰살당하는 것은 양계용 닭들이 유전적으로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유전자 편집으로 인간을 만들어내면 비슷한 일이 인간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개하려고 나름의 설정한 것이다.
조류 독감 같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인간들이 양계장의 닭들처럼 유전적으로 비슷하면서도 좋아 보이는 사례를 제시했다. 가령, 수지나 설현이 각 구나 동마다 있다고 해보자. 유전적 다양성 같은 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인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저렇게 좋은 획일화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들지 않을까? 내가 아르바이트 한 곳은 여고여서 각 구나 동마다 어떤 남자 연예인이 있으면 좋겠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않아서 앞자리에 있는 여학생에게 물었다. “요새 차은우가 잘 생겼다고 하니까 차은우를 복제한다고 치고, 하나 더 한다고 하면 누구를 복제하는 게 좋을까?” 그 학생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부끄러운 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동욱이요.”
이동욱?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아는 이동욱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애가 그런 아저씨를 좋아한다고? 아무리 연예인이라고 해도 고등학생이 좋아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연예인이지만 아저씨는 아저씨이다. 동명이인의 또 다른 이동욱이 있나?
- 나: “이동욱? 설마 내가 나는 그 이동욱인가?”
- 학생: “네, 맞아요.”
- 나: “<도깨비>에 나온 그 이동욱?”
- 학생: “네, 맞아요.”
- 나: “어? 이동욱은 나보다도 아저씨잖아. 그런데 이동욱을 복제한다고?”
- 학생: “네.”
내가 드라마 <도깨비>를 보지 않아서 이동욱이 얼마나 멋있게 나오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동욱이 아무리 관리를 잘 했어도 아저씨는 아저씨이고 절대로 20대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연예인으로는 박진희가 있겠는데, 박진희가 아무리 연예인이고 관리를 잘 했다고 한들 남자 고등학생들 중에 박진희를 복제하자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여학생의 답변을 듣고, 나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일부 사람들의 전략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들이 불평등이나 기타 마음에 안 드는 일에 대처하는 전략은, 그러한 일과 관련된 자연적인 사실을 언급한 후 (i) 그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ii)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이는 자연 본연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멋진 중년 남성과 이를 추종하는 어린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라든지, 남자는 와인과 같고 여자는 케이크와 같아서 나이대에 따른 남녀 매력이 다르다는 주장에 대하여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그러한 현상이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에 그 여학생의 반응이 문화적인 영향보다도 남녀의 생리적인 차이에 의한 것이라면?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그 여학생의 취향을 뒤흔든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취향이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그러한 취향을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 반영한 것이라면?
사실, 대응 방법은 간단하다. 대다수의 아저씨는 이동욱의 근처도 갈 수 없으며 가뜩이나 추하게 생긴 아저씨가 추한 생각을 하고 추한 행동을 하면 더 추하다고 하면 된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연구 능력도 없고 연구 의지도 없는 사람들이 굳이 되도 않게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을 자의적으로 인용하며 말을 덧붙여봐야 취약점만 노출할 뿐이고 정당한 주장마저 정당하지 않게 보이게 만들 뿐이다. 망상에 빠진 남성에게는 이렇게만 말해도 충분하다. “그래, 나이를 먹을수록 더 성숙하고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깊어지는 남성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치자. 그래서 너는?”
(202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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