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에 누군가가 게시중단 요청을 하여 내 블로그 게시글이 임시로 게시중단 되었던 적이 있다. <한겨레>에 “윤석열과 히틀러”(이후에 제목이 바뀜)라는 말 같지도 않은 글이 칼럼이라고 올라와서 그게 왜 말이 안 되며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몇 마디 적었는데 명예훼손 및 기타권리 침해에 해당되어 관련 당사자의 게시중단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회사에 해명했고 회사는 내 해명을 받아들여 한 달 뒤 다시 게시하기로 했다. 게시중단 요청 사유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그러한 요청이 받으면 한 달 간 게시중단을 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대신, 그렇게 게시중단 되었다가 풀리면 다시는 게시중단 요청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학술대회 끝나고 블로그를 살펴보는데 누군가가 내 글에 댓글을 달아놓은 것을 발견했다. 글쓴이가 “비즈니스 실용글쓰기”라고 되어 있어서 또 스팸인가 보다 싶었다. 신고 버튼을 누르려는데 스팸이 아니었다. <한겨레> 정◯◯ 기자 본인이 내 글에 댓글을 단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영광스러울 데가 있나? 나는 대학원생이 칼럼이랍시고 말도 안 되는 글이나 쓰며 까불고 다니는 건 망한 대학원생의 지표라고 생각하여 그동안 최대한 몸을 사리며 대외 활동도 안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최대한 흔적이 남지 않는 것만 했는데 <한겨레> 기자가 내 블로그에 직접 댓글을 단 것이다. 사실, 내가 마음먹고 까불고 돌아다니면 장난 아닐 것 같기는 하다. 지도교수님이 나를 버리고 학계가 나를 쫓아내면 본격적으로 양아치의 길을 걸어야겠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정◯◯ 기자는 화가 많이 나 보였다. 그럴 만도 하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한테 그 사람이 글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썼는지를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글을 못 쓸 수 있다. 못 쓰면 안 되지만 못 쓸 수도 있다. 처리해야 할 업무량도 많을 것이고, 써제껴야 하는 기사량도 많을 것이고, 하나도 모르는 분야에 대한 기사도 써야 할 것이니, 가끔씩 이상한 글을 쓰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만하다. 자기 분야에 관한 글만 쓰면서도 이상한 글만 쓰는 사람도 더러 있으니, 그 정도는 조금 봐줄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기자가 이상한 글을 썼을 경우 적절한 대처법은 그냥 사과하거나 “업무량이 많아 대충 썼다”고 하거나 “당시 몸이 안 좋았다”고 하거나 “뇌에 과부하가 걸려서 일시적으로 오작동했다”거나 하여간 원래는 글을 잘 쓰는데 일시적으로 글을 잘 못 썼다고 하는 것이겠다. 그 글의 취지가 어떠네 저떠네 하면서 사설을 길게 풀어놓으면 원래부터 글을 못 쓴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정◯◯ 기자는 그렇게 했다.
정◯◯ 기자는 “칼럼 형식은 비판 글이라도 재미가 녹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건 글에 대한 기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글이 깔끔하게 완성된 다음에야 비유를 살짝 넣어야 한다. 비유는 조미료 같은 것이다. 애초에 식재료가 썩었으면 조미료는 썩은 맛만 강하게 만들 뿐이다. 정◯◯ 기자에 따르면, 특수부 검사들은 수사를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전격전에 비유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그게 윤석열 비판에 도움이 되나, 재미가 있나? 윤석열의 어떤 점을 비판할지 파악하지도 못한 채 독일의 전격전 같은 소리나 하다가 글을 망쳐놓고는 “비판 글이라도 재미가 녹아 있어야 한”다고 하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게 분명하다. 그냥 칼럼에다 “윤석열 이 히틀러 같은 새끼!” 하고 욕하려다가 망한 거면서 무슨 재미는 무슨 놈의 재미인가? 그런 욕은 아저씨들끼리 술 먹으면서 세상 타령 할 때나 재미있게 하면 된다.
정◯◯ 기자는 내가 깊이 있게 글을 쓰지 않았다며 세 가지 측면에서 지적한다. 첫 번째는 내가 글을 나열식으로 썼다는 것이다. 정◯◯ 기자를 이완용, 김의겸, 히틀러, 심영,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에 비유했는데, 이렇게 나열식으로 쓰면 글의 깊이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깊이 없는 글을 쓴 것은 맞다. 왜냐하면 정◯◯ 기자의 칼럼이 잘못되었음은 투명하게 보이므로 깊이 있는 글 자체를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별개로, 이 부분에서 정◯◯ 기자는 두 가지를 잘못 판단했다.
하나는 내가 글을 단순히 나열식으로 쓴 게 아니라는 점이다. 윤석열과 히틀러가 비슷하다는 정◯◯ 기자의 유비가 적절한 것이라면 같은 방식으로 정◯◯ 기자와 이완용, 김의겸, 히틀러, 심영,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이 모두 비슷하다는 유비도 모두 정당화되며, 내가 제시한 유비가 틀리다면 정◯◯ 기자가 제시한 유비도 틀리다. 당연히 내가 제시한 유비는 적절하지 않으며, 이는 정◯◯ 기자의 유비도 같은 방식으로 틀렸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내가 이완용, 김의겸, 히틀러, 심영,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을 제시한 것은, 어떤 대상이든 무수히 많은 속성을 가지므로 아무 두 대상이나 찍어서 유관하지 않은 속성을 가지고 두 대상이 비슷하다고 우기려면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우길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우길 수 있다”고만 하면 사람들이 이를 안 믿을 수도 있으니 전혀 다른 분야의 다섯 명을 제시하여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 기자 자신이 2차대전 전격전에 비유했기 때문에 나도 그에 맞서는 내용으로 비판했으면 깊이 있는 글이 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한 점이다. 전격전을 언급했다고 한들, 칼럼에 나온 것이라고는 똘똘한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알 만한 피상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 기자가 칼럼에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라도 인용한 줄 알겠다. 정◯◯ 기자가 자신은 독일의 전격전을 가지고 비유했으니 나보고는 “소련이 나치에 어떻게 대항해 승리했는지 비유”하여 자기 “기사를 비판하면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한 부분을 읽을 때는 정신이 약간 아찔했다. 상대방이 똥구덩이에 있다고 해서 왜 나까지 따라 들어가야 하나? <한겨레>에서는 정말 글쓰기를 그런 식으로 가르친다고?
두 번째는 제목을 자극적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제목은 정◯◯ 기자가 칼럼에 원래 붙였던 것을 내가 약간 비튼 것뿐이다.
세 번째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대신 메신저를 공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메신저를 공격한 건 애초에 “윤석열과 히틀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정◯◯ 기자고, 나는 정◯◯ 기자의 칼럼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보여준 것뿐이다. 물론, 기자가 얼마나 글을 못 쓰는지 보여주는 것이 메시지라면 메신저가 조금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글을 잘 썼어야지.
괘씸한 것은, 정◯◯ 기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는 점”을 운운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정◯◯ 기자가 심영에 빗대여 생식 능력을 상실한 고자임을 주장한 것이아니라 정◯◯ 기자와 심영이 비교하는 것이 부당하듯 윤석열과 히틀러를 비교하는 것이 부당함을 보여준 것뿐이다. 그런데도 정◯◯ 기자는 “이런 식의 메신저 공격은 졸렬한 글쓰기”이며 그러한 공격은 “능력 없는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며 “법적으로 명예훼손”이 되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응, 알았다. 동료 대학원생이 안부 인사로 “소송을 어떻게 잘 처리되었나요?”라고 물으면 나는 “몇 번째 소송을 말하는 거죠?”라고 되묻는 판이다. 이게 실제 소송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난이도 하에 해당해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나는 소액주주이지만 <한겨레> 주주이고, 지난 대선 때 윤석열에게 투표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윤석열 정권을 지지하지 않고, 적은 돈이지만 정의당에 매달 당비를 내고 있다. 그런데 <한겨레> 기자가 죽사발 난 글을 칼럼이랍시고 써놓았길래 내가 <한겨레> 홈페이지도 아니고 개인 블로그에 뭐라고 몇 줄 쓴 거 가지고 <한겨레> 기자가 명예훼손 고소를 운운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직업도 없이 변변치 않게 살아도 그렇지 어떻게 이 정도로 겁이 없나 모르겠다. <조선일보> 같은 데에 “<한겨레> 기자, 글도 못 쓰는 주제에 일반인한테 지랄해” 같은 제목으로 기사라도 나면 어쩌려고 저러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는 거의 망했지만 강용석 채널은 여전히 잘 나가니 그런 데서 이 일을 다루면 상당히 재미있어 할 것이다. 강용석 변호사하고 정◯◯ 기자하고 명예훼손 소송 한 번 벌이면 그 것도 볼만 하겠다.
(20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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