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3

자연으로부터 얻는 교훈



자연의 질서나 법칙이나 패턴을 인간이 본받아야 할 어떠한 기준으로 삼는 정서가 아직까지도 한국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모양이다. 동료 대학원생이 최근에 본 과학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왜 물속에서 총알보다 작살이 더 빨리 나가는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었는데, 영상을 멀쩡하게 다 만들어놓고는 “때로는 빠른 것보다 느린 것이 결국은 더 빠른 게 아닐까요?”라며 영상을 끝냈고, 이러한 감성 멘트에 대해 사람들은 “이런 게 문・이과 통합이지!” 하는 식의 호응을 댓글로 남겼다. 그런 게 문・이과 통합이라고 한다는 건 사람들이 문과를 사실상 똥으로 본다는 건데(허무맹랑한 소리나 하는 것을 문과라고 여기다니), 하여간 자연의 모습이 인간이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 여기는 정서가 아직도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것 같기는 하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정서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매우 오래된 것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자연은 우리가 따라야 할 모습을 보여주는가? 자연은 우리에게 삶의 지침이나 교훈을 주는가? 아니다. 대부분은 아무 데서나 교훈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개억지에 불과하다.

내가 학부를 다닐 때 학생회 선거 준비하는 사람들이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매니저(안성기)가 최곤(박중훈)에게 대사를 따와서 홍보 문구 같은 것을 만들기도 했다. “곤아, 별은 말이지, 저 혼자 거저 빛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되는 거야.” 학생회 선거 출정식 같은 데서 후보로 나온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나는 옆에 있던 선배한테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 “저거 다 뻥이에요. 우리가 보는 별은 대부분 혼자 빛나요.” 선배는 나보고 조용히 하라고 했다.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없더라도 별이 다른 별의 빛을 받아서 저렇게 밤하늘에 빛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별이든 다른 별의 빛을 받아 빛난다고 해보자. 그래도 어떤 별은 혼자 빛을 낼 것 아닌가? 혼자서 빛을 내는 별이 전체 관측가능한 별 중 소수이고 나머지 별은 그 소수 때문에 빛을 낸다고 해보자. 이걸 가져와서 20 대 80의 법칙 같은 소리를 하면 미친 놈이다. 철저하게 과학적 사실에 입각해도 교훈은 따라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별이 혼자 빛나듯 사람도 다 각자 잘 나서 사는 거라고 해보자. 이건 멀쩡한 소리인가? 이렇게 말하면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별은 별이고 사람은 사람이잖아!” 그렇다. 별은 별이고 사람은 사람인데, 무슨 놈의 교훈인가?

천체가 아니라 지구상의 생명체로 넘어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가령, 동물들이 새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보면서 부모의 뭐시기 같은 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집 고양이도 새끼를 기를 때는 보니 헌신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고양이가 새끼를 위해 헌신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새끼를 버리거나 죽이거나 잡아먹는 일도 빈번하다. 그걸 보고 누군가가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고양이도 자기 새끼를 죽이는데 그보다 훨씬 흉악하게 생긴 인간들이 자기 새끼 좀 죽이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라고 한다면, 그건 그냥 미친 놈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고양이가 새끼에게 헌신하는 것은 인간이 본받아야 할 바를 보여주는 것이고 고양이가 새끼를 물어 죽이는 것은 그렇지 않은가? 고양이가 새끼에게 헌신하는 모습은 분명히 인간에게 어떤 감동을 주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것이 곧바로 사람이 자식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약간 틀어보자. 마치 자연의 어떠한 속성이 인간 사회의 차별이나 억압을 반대하는 증거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가령, 인종별 지능 차이나 성별 지능 차이가 유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종 차별이나 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반박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칭찬할 만하겠으나, 그게 맞는 말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과학자들이 인종별로 지능을 측정했는데 정말로 지능 차이가 유의미하게 난 것이다. 이렇게 재봐도 유의미하게 차이나고 저렇게 재봐도 유의미하게 차이난다. 과학자들의 카르텔을 의심한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이 직접 과학을 배우고 학위를 받고 연구소에 들어가서 직접 지능을 재보았는데도 지능이 유의미하게 차이가 나고, 평균 지능이 낮다고 하는 인종의 비교적 똑똑한 사람이 과학을 배워서 지능을 재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런 세계에서는 인종 차별을 해도 되나? 안 된다. 지능 차이에 근거하여 인종 차별을 옹호하는 과학자의 지능지수가 120이라고 해서 멘사 회원들이 그 사람의 집을 약탈하고 불 지르고 그 과학자와 지능지수가 비슷한 가족들을 살해하면 안 되는 것처럼, 어떤 인종의 지능이 정말로 다른 인종보다 유의미하게 낮다고 해도 인종 차별은 하면 안 된다.

아무리 봐도 애초에 지능 차이가 인종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지능 차이가 유의미하지 않은 것이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근거가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연구를 쉽게 하는 것인지 세상을 쉽게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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