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에 속한) 과학철학과 과학철학이 아닌 분석철학의 차이점에 관하여 과학철학에 흥미가 생긴 철학과 대학원생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대학원생이 보기에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과학적 실행과 관련된 태도인 것 같다고 했다. 과학철학에 과학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규범적인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과학적 실행에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는 반면, 과학철학이 아닌 분석철학에서는 과학적 실행 같은 게 들어올 여지가 상당히 적다는 것이다. 마침, 그 대학원생도 석사학위논문을 인과를 주제로 썼고 나도 인과로 박사학위논문을 쓰려고 하고 있어서 둘의 차이를 비교적 쉽게 비교할 수 있었다.
그 대학원생에 따르면, 형이상학에서 인과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있는데 크게 결과가 원인에 의존한다는 견해와 원인이 결과를 산출한다는 견해로 분류할 수 있고, 두 견해 모두 설득력이 있는데 서로 화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여기에 과학에서 인과 개념을 어떻게 쓰는지, 과학자가 인과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고려할 여지는 크지 않다.
내가 읽은 과학철학 논문에서는 논문 맨 앞부분에서 과학의 관행이나 과학자들의 이해를 언급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헨셴의 2018년 논문은, 거시경제학에서 언급되는 인과성에 관한 해명은 네 가지(Granger, Hendry, Hoover, Angrist&Kuersteiner)뿐이며 이 네 가지를 개입주의로 포괄할 수 있다고 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헨셴의 견해를 반박하는 마지아즈와 므로즈의 2020년 논문은, 인과에 대한 논의는 크게 규칙성, 반-사실성, 확률, 메커니즘, 개입주의, 이렇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경제학에서 규칙성, 반-사실성은 언급하지 않는다며 이 둘은 빼고 논의를 시작한다. 헨셴은 인과의 다양한 수준(level)에서 직접적 유형-수준 인과를 다루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간단하다. 경제학자들은 유형-수준 인과에 관심이 있고 토큰-수준 인과에는 관심이 없으며, 토큰 수준에 관심이 있더라도 있더라도 토큰을 유형의 예화로 보지 유형을 토큰의 일반화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과학철학이 아닌 분석철학에서는 충분히 저민 것 같은데 저미고 또 저미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고, 과학철학에서는 덜 저미는 대신 어디서 뭘 자꾸 가져온다고 느꼈었다. 아마도 이 또한 과학적 실행에 대한 두 분야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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