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밭에서 풀을 베다가 낫에 찔렸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낫에 찔려 피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컴퓨터 때문에 이틀 동안 정신이 약간 나가 있었다. 비밀번호 바꿀 때가 되었다고 뜨길래 내가 사용하는 여러 개의 비밀번호 중 하나로 비밀번호를 바꾸었다. 평소 쓰던 비밀번호였다. 그러고 나서 로그인을 하려고 했는데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비밀번호를 바꿀 때 자판을 잘못 눌렀고 두 번 연속 잘못 눌렀던 모양이다.
같은 비밀번호를 여러 번 입력해보고, 다른 비밀번호도 한 번씩 다 입력해보고, 바꾼 비밀번호의 가능한 오타를 염두에 두고 비밀번호를 입력해보기도 했다. 다 안 되었다. 비밀번호 뚫은 방법을 찾아서 그대로 해보았다. 하라는 대로 그대로 한다고 했는데 되지 않았다. 예전에 그런 식으로 뚫어본 적이 있는데 왜 안 될까? 그 때는 윈도우7이었고 이번 것은 윈도우10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튜브 영상을 보니 윈도우10도 되기는 된다고 되어 있었는데, 왜 안 될까? 그러게나 말이다.
그러고 있는 동안, 내가 조교로 일하는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과 줌으로 면담하기로 된 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비밀번호를 풀지 못했다. 학생들이 나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양해를 구하고 비밀번호를 풀려고 했다. 다 안 되었다. 휴대전화를 통해 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을 모르고 그 때까지 휴대전화로 줌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줌 앱을 다운받고 실행했다. 실행이 안 되었다. 왜 실행이 안 되는지 몰랐다. 그렇게 컴퓨터도 못 쓰고 휴대전화도 못 쓰고 시간이 지나갔다.
한참을 낑낑거리다가 컴퓨터 수리점에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네에 있는 모든 컴퓨터 수리점에 연락했는데 모두 윈도우10이면 포맷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넷에서는 분명히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왜 안 된다는 것인가? 시골은 살기 힘들다. 학원도 못 가르치고, 건물도 대충 짓고, 음식도 맛이 없고, 컴퓨터도 못 고친다.
어쨌든 휴대전화로 줌을 사용하게 되었고 학생들하고 연락해서 양해를 구하고 원래 낮에 면담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을 절반은 저녁시간으로 바꾸고 절반은 다음 날 오전으로 바꾸어서 면담을 모두 정상적으로 마쳤다.
그런데 컴퓨터는 여전히 상태가 안 좋았다. 내가 이상한 것을 눌렀는지 점점 컴퓨터 상태가 이상해졌다. 나는 내가 무엇을 눌렀는지 정확히 몰랐고 컴퓨터에 저장된 것이 다 날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일어났다. 내가 백업을 언제 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순간, 대학원 입학 이후의 일들이 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갔다. 삼성 A/S 센터에 전화하고 기사 방문 예약을 잡고 난리가 났었는데, 하여간 다행히 하드디스크에 있는 것을 외장 하드에 백업하고 삼성복원솔루션으로 윈도우 7.1로 돌려놓았다. 중간에 윈도우 10으로 업그레이드했었는데 그 때 무슨 시스템 충돌이 나서 그냥 윈도우 7.1로 한 것이다.
그렇게 정신이 이틀 간 살짝 나갔다 돌아온 뒤, 저녁 즈음 햇빛이 약할 때가 밭을 둘러보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내가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아서 나무 근처에 풀이 많아 자라 있었다.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토시를 끼고 왼손 낫을 들고 와서 풀을 베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긴 바지를 입고 일하라고 했고, 나는 더운데 괜찮다고 하고 그냥 계속 일했다. 그러다 질긴 넝쿨 같은 것이 낫에 걸렸고 넝쿨을 끊으려고 낫을 확 당기다가 무릎 근처를 콱 찍어버렸다.
낫이 살에 박혔을 때 약간 찌릿하는 느낌이 와서 다친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큰 통증은 없었다. 피가 조금씩 나오는 것이 아니라 느린 속도로 줄줄 나왔는데 과다출혈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걱정한 것은 신경이나 연골이나 힘줄 같은 것을 건드는 것이었는데 무릎을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만져보고 했는데도 특별한 이상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멈추고 곧바로 집으로 갔는데 집에 가는 동안에도 피가 계속 났다.
집에 도착해서 소독하고 지혈하니 피가 멈추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다음 날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잤다. 자고 일어나니 상처 난 곳이 욱신거렸다. 그 전날은 그러지 않았는데 세균 감염 때문인 것 같았다. 병원에서 의사가 상처를 보더니 세균이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내 행색을 보고 내가 그냥 농사짓는 사람인 줄 알고 그렇게 표현한 것 같았다. 의사는 상처가 크지 않더라도 이렇게 살이 벌어지는 상처가 나면 바로 병원에 와서 꿰매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상처가 벌어지면 꿰맬 것. 그래서 상처를 꿰매야 하느냐고 물으니 의사는 이미 살이 붙어서 꿰맬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얼굴도 아니고 무릎이니 미용상 큰 문제는 없겠다. 개뻥쳐야 할 자리가 있으면 무릎을 보여주면서 패싸움하다가 낫에 찍혔다고 해야겠다.
하여간 이번 일을 겪고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낫에 찍혀서 생긴 단순한 세균 감염 정도야 동네 의원에서도 조치할 수 있을 정도로 경미한 것인데, 내가 시대를 만나서 전-근대 시대에 태어났다면 파상풍으로 죽든지, 무릎 위를 잘라내든지, 아니면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해 불에 달군 인두로 상처를 지져야 했을 것이다. 역모도 안 저질렀는데도 안 죽으려고 인두질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게 다 근대적인 의학 덕분인데, 왜 몇몇 전문적인 글에서는 근대 의학의 혜택을 다 설명해놓고는 엉뚱한 곳에서 근대성은 악이고 근대는 지옥이라는 식의 노래 후렴구 비슷한 구절을 써넣는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그런 식으로 써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그런 쪽과 관련하여 읽은 것이 하나도 없어서 옳다 그르다 평가를 하기 힘들다. 도대체 푸코가 뭐라고 했길래 그러는 건지 궁금하다. 인터넷 기사 읽듯 힘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 나중에 앞가림을 하고 나서 읽든지 해야겠다.
어쨌거나 내 무릎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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