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5

고등학교 과학신문 동아리의 강의 요청

     

며칠 전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평생교육원에서 강사 요청과 관련하여 나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어떤 고등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는데 적당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강사들의 이력서를 살펴보다가 내가 그나마 제일 적합할 것 같아서 연락했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강연이길래 적합한 사람이 그렇게 드물었을까? 담당자는 어느 고등학교의 과학신문 동아리에서 미래의 과학기사는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강연을 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아르바이트를 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사기를 쳐도 어느 정도는 사실에 근거해서 쳐야 하는데, 이건 근거할 사실이 전혀 없지 않은가? 미래 과학을 전망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고 미래의 신문 기사를 예측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인데, 미래의 과학기사가 어떤 식으로 변할지 내가 어떻게 예측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견적 자체가 나오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담당자도 웃으면서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미래의 과학기사가 어떤 식으로 변할지 말지를 떠나서, 왜 고등학교에 과학신문 동아리가 있는지 그게 더 신기하다. 몇 년 전에 학회 총무간사를 할 때 어떤 이상한 아주머니가 자기 아들이 학급신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숙사 학교라서 전화를 못한다면서 이번 학술대회가 몇 회째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아주머니가 학술대회가 몇 회째인지를 물으면서 문턱에 발을 걸치더니, 나중에는 자기 아들이 SF영화를 보고 쓴 감상문을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수 있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하여간 나는 그 때 고등학생이 학급신문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학급신문을 왜 만드는가? 말이 신문이지 학생들이 취재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 때는 그냥 이상한 아주머니와의 헤프닝 정도로 여기고 그냥 넘겼다. 그런데 이제는 고등학교에 아예 신문 동아리까지 있다는 것이다.

 

과학신문 동아리 같은 것을 왜 하겠는가? 도대체 거기서 뭘 가르치고 뭘 배우겠는가? 아마도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고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물론, 교사의 태만 때문도 아니고 학생의 불성실 때문도 아닐 것이다.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대학 가려면 고등학교에서 책 한 줄 읽은 것까지 기록으로 남겨서 알리바이를 만들라고 하는 판이니 아무리 헛짓거리라고 하더라도 그런 동아리를 만들고 되든 안 되든 기록으로 남겨야만 할 것이다.

 

내가 교수인데 대학에 입학하려는 고등학생이 과학신문 동아리 같은 곳에서 활동한 내역을 자료로 내면 황당할 것 같다. 자료를 받아보고 “그래서 어쩌라구요?”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것을 실제로 하고 있다는 것은 대학 입학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아닌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자료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대학에 못 들어간다는 것 아닌가? 이런 짓을 왜 해야 하는가?

 

낭만쟁이들은 분명히 수능 점수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달라고 그랬나? 대학에서 학생에게 요구할 만한 것은 그 학생이 대학에서 공부하는데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한 것인데 과학신문을 만드는 것이 그 학생의 어떤 점을 보여줄 것인가? 대학에 입학하고 싶다, 고졸자로 남고 싶지 않다는 의지 외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학생마다 다양한 개성이 있다고 입 발린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정말로 남다른 개성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학생이 전체 학생 중에 몇 퍼센트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직업이 2만 개 정도 있다고 치면 각 직업별로 1등부터 100등까지 해봐야 200만 명이고 500등까지 해봐야 1천만 명이다. 5천만 명 중에 절대 다수는 어느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애초부터 별다른 개성 같은 것이 없으니 수능 점수 같은 것으로 등수별로 잘라도 그리 큰 문제 될 것은 없다. 설사 숨겨진 개성이 있다고 한들, 숨어있는 것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러니까 점수별로 자르든지 등수별로 자르는 것이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될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될 것이 아닌데, 점수를 잘 받든지 등수가 높은지 좋은 대학 간 사람들이 나 잘났다고 하면서 지랄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다. 낭만쟁이들이 마치 점수나 등수로 나누는 것이 아미 비-인간화의 상징인 것처럼 난리를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 웬만큼 뻗댔으면 모르겠는데, 그들이 도를 넘어서서 뻗대고 행패 부리는 바람에 낭만쟁이들의 개소리가 마치 맞는 말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수능 점수로 치사하게 굴지 않는다고 해서 치사한 꼴을 안 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시골 동네에서는 수능으로 답이 안 나오니까 내신으로 대학을 보내는데 어정쩡한 놈들이 상을 나누어 가져가면 아무도 대학을 못 가게 되니까 대학 갈 것 같은 놈한테 교내대회 상을 몰아준다. 아니, 수학 못 하고 과학 못한다고 해서 글짓기까지 못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좋은 대학을 못 가든가 아예 대학을 못 간다고 해도 고등학교 때 받은 상장 하나 가슴에 품고 살 수도 있지 않은가? 아들한테 “아빠가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 못했지만 시를 학교에서 제일 잘 썼단다” 이런 식의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어차피 대학도 못 갈 놈이 시는 무슨 놈의 시며 글은 써보았자 무슨 글을 쓰느냐고 학교에서 대놓고 보여주는 것이다.

 

낭만쟁이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결국 어떻게든 치사한 꼴을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치사하게 살지 않을 수가 있을까?

  

 

(202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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