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2

화천이의 사투



화천이가 사랑방 방충망 틈으로 기어들어가 새끼를 낳은 지 여러 날이 되었다. 어느 구석에서 새끼를 낳고는 며칠 뒤에 안 쓰는 냉장고 옆으로 새끼를 죄다 옮겼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원래는 여섯 마리였는데 어느새 다섯 마리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고양이가 사람 사는 집에 살면 고양이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새끼들은 그 자리에서 똥오줌까지 싸고 있으니 얼른 화천이와 새끼들을 방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그렇다고 강제로 끌어낼 수도 없으니 일단은 화천이가 사랑방을 쓰게 했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 사랑방을 쓰는 상황이니 화천이가 지나다니도록 문을 열어두기로 것이다. 그러니까 화천이가 이긴 셈이다.

나는 화천이와 새끼들이 자연스럽게 방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새끼들이 있는 냉장고 바로 앞에 골판지로 고양이 집을 만들고 새끼들을 모두 옮겼다. 새끼들은 골판지 집이 원래 집인 것처럼 얌전히 있었고 화천이도 골판지 집에 들어와서 새끼들을 돌보았다.

예전과 달리 화천이는 새끼들을 잘 돌보았다. 예전에 암컷 고양이 두 마리가 비슷한 시기에 새끼를 낳으면 화천이는 가끔씩 집에 들어와서 새끼들한테 젖만 주고 나가고 다른 암컷 한 마리가 전담해서 새끼를 돌보았다. 어머니는 그런 화천이를 보고 건달처럼 돌아다닌다고 표현했다. 이번에 화천이는 새끼들을 잘 돌보았다. 새끼를 잘 돌보았다는 증거는 새끼들 중 눈곱 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화천이는 새끼들이 눈곱이 끼든 말든 동네를 싸돌아다녔는데 이번에 낳은 새끼들은 눈곱 하나 없이 깨끗하다. 고양이 새끼에게 눈곱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건강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미가 새끼를 잘 돌보고 있다는 일종의 지표이다.(길바닥에서 고양이 새끼 주워와서는 ‘냥줍’이라면서 염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일 눈곱이 끼지 않는 새끼를 주워왔다면 새끼 고양이를 유괴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새끼들이 다 잘 자랄 것으로 생각했고 새끼들이 폴짝폴짝 뛰어다닐 즈음에 골판지 집을 통째로 현관문 앞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끼가 약간 크니까 화천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수컷 고양이를 부르더니 어디론가 가서 놀고 오기는 했지만, 새끼들 자고 있을 때 놀고 와서는 멀쩡하게 젖 주고 잘 돌보니까 별 문제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께 밤이었다. 사랑방 쪽에서 고양이들이 싸우기 직전에 나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마침 내가 작업할 것이 있어서 안 자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현관문에서 나와서 사랑방 쪽으로 가는데, 사랑방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 고양이가 하얀 새끼를 물고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뭐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어서 검은 고양이를 쫓아갔고 화천이도 뛰어나와서 검은 고양이를 뒤쫓았다. 검은 고양이가 물고 있던 것은 화천이 새끼였다. 하얀 화천이 새끼가 빽빽거리면서 울었다. 나는 예전에 화천이가 자기 새끼를 물어 죽이는 것도 보았기 때문에 차라리 검은 고양이가 화천이 새끼를 물어 죽이고 도망가는 것이었으면 덜 놀랐을 텐데, 살아있는 새끼를 물고 도망가는 것은 처음이라 많이 놀랐다. 검은 고양이를 쫓아가기는 했는데 불빛이 없는 곳으로 금방 숨어버려서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낮이었으면 어떻게 해보았을지 모르겠는데 오밤중이라 검은 고양이를 계속 쫓아갈 수도 없었고 새끼를 찾을 수도 없었다.

사랑방에 오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검은 고양이의 털이 군데군데 빠져 있었고, 방바닥에 물을 뿌려놓은 것처럼 어떤 액체가 흥건했다. 고양이 오줌이었다. 화천이는 방바닥에 온통 오줌을 흘리면서 검은 고양이와 싸웠고, 그 과정에서 검은 고양이는 털이 빠졌고, 새끼들을 물어 죽이는 것이 여의치 않으니까 한 마리를 물고 튀다가 나와 마주친 것이었다.

골판지로 된 고양이 집 안에는 남은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굳은 것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만져보니 네 마리는 모두 무사했다. 고양이 오줌은 골판지 집 안에도 있었다. 아마도 화천이가 골판지 집 밖에서 싸우다 피하려고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웅크리고 수컷 고양이와 대치하다가, 수컷 고양이가 집 안에 들어와 새끼 한 마리를 물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검은 고양이와의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어쨌든 화천이는 검은 고양이를 쫓아냈고 새끼 네 마리를 지켰으니 싸움에서 이긴 것이지만 새끼 한 마리를 잃게 되었다. 낮에 집 근처를 돌아다녀 보았는데 새끼의 시체도 찾지 못했다.

방바닥에 고양이 오줌이 너무 흥건해서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걸레를 빨아서 한참을 닦았다. 걸레를 몇 번 빨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정리를 하니 화천이는 진정이 되는지 새끼들을 돌보고 꼬리를 들고 내 주변을 몇 번 빙빙 돌았다. 그러나 화천이 속이 속이었겠는가. 낮에 보니 골판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가 사랑방을 거의 정리하지 않아서 방의 한 구석에는 고장난 가전제품도 쌓여있는 곳이 있는데, 화천이는 그 곳 깊숙한 곳에 새끼들을 숨겨놓았다.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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