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진 사건과 관련하여 직장 내 갑질이 있었다는 폭로가 나오자, 중간 관리자의 개인 인성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물론, 중간 관리자가 인격자였다면 그런 행태를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 사건을 단순히 중간 관리자 개인의 인격 문제로 한정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른 한 편에서는 시험 좀 보았다고 사람이 죽는 것이 말이 안 되느냐는 둥, 청소노동자의 사망과 직장 내 갑질은 별개의 문제라는 둥 하는 글도 올라오고 있다. 이는 냉철한 척 하는 멍청한 냉혈한들의 의견일 뿐이다.
중간 관리자가 그냥 포악한 미친 놈이라고 치자. 그러면 중간 관리자를 두고 “평소 업무를 잘 하던 사람”이라고 한 서울대 관계자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내가 소설을 쓰자면, 아마도 중간 관리자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업무와 상관없는 필기시험을 보게 한 것을 자신의 업무 중 일부라고 여겼을 것이다.
아무리 미친 놈이라고 하더라도, 건물의 준공연도를 아는 것이나 건물 명칭이 영어나 한자로 쓸 줄 아는 것이 청소노동자가 업무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왜 시험 보았을까? 중간 관리자는 청소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그러한 것을 숙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임을 알았을 것이고,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험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괴로우라고 시험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냥 괴롭힘 아닌가?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2019년 서울대에 청소노동자로 입사한 이씨는 주 5일 40시간 근무를 했다. 주말에도 출근해 4시간여의 노동을 했다. 이씨가 사망한 날도 토요 근무를 한 날이었다. 동료들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일회용 쓰레기가 늘어 업무강도가 늘었음에도 학교 측에서 인원 증원 등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고 했다.
강압적인 태도로 노동자는 대하는 것은, 대체로 많은 양의 노동을 시키거나 업무 강도가 높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다. 시설관리가 대단한 기술 혁신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니 효율을 높이는 방법은 노동력을 쥐어짜내는 것이었을 것이다.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쥐어짜려면 노동자들이 지시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도록 해야 하고 그러려면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일종의 규율이 필요하다. 어떤 식으로 규율할 것인가?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시험과 복장 검사였을 것이다. 업무와 무관한 것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고 모욕감을 느끼고 상급자에게 꾸중 받는 것이 일상이 되면, 업무와 관련해서 무리한 지시를 수행하는 것은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중간 관리자는 이러한 생리를 알고 있었을 것이고, 서울대에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규율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학교 관계자들은 중간 관리자가 업무를 잘 한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간 관리자가 청소노동자들에게 시험을 보게 한 것은 개인 인성 차원에서 볼 일이 아니라 노동 환경에 관한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링크: [경향신문] ‘사망’ 서울대 청소노동자 동료들 “건물명 영어쓰기 시험 등 모욕··· 직장갑질”
( 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7071404011 )
(202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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