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chael Ruse (1986), “The Academic as Expert Witness”, Science, Technology, and Human Values, 11(2): 68-73. ]
1. Should Academics Ever Be Expert Witnesses?
2. Who Is Responsible for Legal Strategy?
3. What Is The Witness’s Responsibility?
4. Concluding Reflections
■ [p. 68]
루스의 작업은 신학적인 증언과 과학자들의 간극을 연결한 것
이 작업에서 보여주어야 했던 것
(i) 진화론이 단순히 독단적이고 무신론적인 과학이 아니라는 것
(ii) 적절한 기준으로 판단할 때 현대 진화론은 과학으로서 자격이 있고 창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
루스의 증언에서 철학적인 부분은 후자에 더 핵심적이었고, 오버튼은 루스의 논증을 아칸소 주의 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근거로 삼았음.
68
오버튼의 판결 이후, 래리 라우든은 서둘러 루스의 논증을 비판함.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 둘을 구분하는 데 실패했으며, 창조론은 종교적이라서가 아니라 나쁜 과학이기 때문에 교실에서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
퀸도 루스를 공격함.
루스/오버튼이 미국 헌법을 잘못 해석했고 창조과학을 교실에서 쫓아내기 위해 창조과학이 종교적이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음.
루스/오버튼이 자신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실패함.
루스는 퀸의 논증이 정당성 없음을 논증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는 기껏해야 전문 철학자들 사이의 기술적인 논증으로 이끌 것이라고 봄.
68-69
그렇지만 퀸의 공격은 중요한 쟁점을 제기했음.
퀸은 어떠한 전문가가 전문가 증인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하기 위한 다양한 기준을 결론 내림.
그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부적절한 대표”의 문제
루스는 퀸의 비판에 대응하여, 전문가 증인으로서 학자가 참여할 때 제기되는 세 가지 문제와 이에 대하여 답변하고자 함.
1. Should Academics Ever Be Expert Witnesses?
■ 학자가 전문가 증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 [p. 69]
학자가 전문가 증인이 되지 말아야 하는 경우는, 누구도 증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경우로, 안 좋은 판결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법을 기술적으로 이용하는 것뿐임.
학자가 전문가 증인이 되어야 하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경우
예) 병리학 전문가가 살인 사건을 다루는 재판에 참여하는 것
이는 삶의 직접적인 문제와 관련된 최첨단의 과학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
동물 학대와 관련해서 피터 싱어가 전문가적 견해를 제공할 수 있는데, 이는 금속공학자가 다리 붕괴에 관해 증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
누군가는 학자가 도덕적인 압력 없이 “청부업자”가 될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고, 특히 상당한 수수료가 포함된 경우에 그렇다고 주장할 수 있음.
루스는 아칸소 재판에 참여한 전문가 증인 중 수수료를 받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밝히면서, 원칙적으로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지식을 팔지 말아야 할 근거는 없다고 말함.
미국은 판사나 배심원 앞에서 두 편이 특정한 규칙에 따라 논쟁을 벌이는 대심제도를 운영하며, 이러한 사법 체계에서 사람들은 전문가를 필요로 함.
누군가는 재판에 참여하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함.
참여하기 싫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증인이 되는 것을 도와야 함.
(실제로 상당수의 과학철학자들은 법원에 나가기 싫다는 이유로 미국시민자유연맹을 돕지 않았음.)
2. Who Is Responsible for Legal Strategy?
■ 구획 기준을 만든 배경 [pp. 69-70]
아칸소 주의 법이 주립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하도록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는 것을 보여야 했음.
루스의 증언을 법률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미국시민자유연맹 본사에서 온 노빅은, 미국 헌법은 나쁜 과학을 가르치는 것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과학이 나쁜 과학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거듭 주장했음.
그래서 어떠한 구획 기준으로 과학과 종교를 나누어야 했음.
■ 구획 기준에 대한 퀸의 비판 [p. 70]
퀸은 이러한 헌법 해석을 인정하지 않음.
루스가 법을 잘못 이해했고 미국시민자유연맹도 법을 잘못 해석했으며, 오버튼의 판결에는 “다양한 오류”가 있다고 함.
퀸은 루스가 제시한 구획 기준이 과학과 비-과학을 분리할 것임을 부정함.
퀸은 어떤 것은 과학적인 동시에 종교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임.
창조과학이 의심할 여지 없이 틀렸기 때문에, 누군가 창조과학을 가르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며 그 목적은 종교적일 것임.
그래서, 아칸소 주의 법은 종교의 증진을 주된 취지로 하고 과학의 증진을 부차적인 취지로만 하는데 이는 위헌임.
그러므로, 구획 기준은 필요 없으며, 창조과학을 과학이라고 해도 교실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음.
루스는, 퀸의 주장이 잘 받아들여진다면, 창조론에 대한 싸움은 그의 제안보다 더 격렬하지 않겠냐는 의문을 제기함.
루스는 미국인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므로, 이 점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기로 함.
■ 누가 소송의 전략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가? [pp. 70-71]
퀸은 루스에 관한 쟁점을 제기함.
누가 소송의 전략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전문가 증인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
전문가는 전략(또는 결과)에 대한 칭찬이나 비난을 나눠가져야 하는가?
루스의 대답: “그 자신을 변호하는 변호사는 그의 고객만큼 어리석다.”(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다만, 누군가가 전문가 증인이라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이 배운 대로 법을 따라야 함. 그것이 그 사람의 일이며 의무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아칸소 주 재판에서, 오버튼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주는 그의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음.
그 이후 루이지애나 주에서 열린 창조과학에 관한 재판은 오버튼의 판결을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음.
3. What Is The Witness’s Responsibility?
71
퀸의 비판의 핵심
핵심(1): 루스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고 그 결과로 오버튼의 판결은 오류가 많음.
핵심(2): 과학철학 공동체가 배신당했음. 이미 나쁜 선례가 너무 많음.
71-
퀸이 제기하는 질문
전문가 증인으로서 전문가와 그의 학문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전문가는 그의 학문을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가?
퀸은 증인의 견해가 “관련된 학자들의 공동체에서 합의된 의견을 대표”하기 전까지 입을 열지 않는 게 낫다고 한다.
루스는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음.
71-72
증인이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함.
전문가가 법정에서 말하는 것은 그가 믿는 것이어야 함.
이는 단순히 전문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문가로서 생각할 때 합리적인 것을 말한다는 것
그러한 진술에 모든 사람이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님.
합리적인 불일치는 전문가 사이에 존재함.
어떤 전문가의 의견은 혼자만의 의견일 수 있음.
중요한 것은 만장일치나 대다수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견해가 합리적이고 그 분야의 지식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
72
전문가 증인으로서 전문가와 그의 학문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증인은 그 분야의 대변인이 아님.
그렇다고 그 학문과 그 전문가가 연결되지 않는 것도 아니며 그 학문은 그 증인이 진짜임을 보여줄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님.
증인의 권위는 그 학문의 승인에서 나옴. 학위, 명예, 출판 등.
반대로 증인의 행위는 그 학문을 반영함.
법원에서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철학자는 철학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것이고, 자신의 주제를 명확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의 학문의 신뢰성을 높일 것임.
전문가가 의견을 제시할 때, 그 의견이 그 학문에서 인기 없는 주장이라고 해도, 그 학문의 신뢰성을 떨어뜨리지 않음.
그래서, 아칸소 재판의 주요한 문제가 “루스의 견해가 과학철학자들 사이의 합의를 대표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점은 핵심을 빗나간 것임.
4. Concluding Reflections
72-73
아칸소 주 재판은 부분적으로는 진화론을 방어하는 것이었고, 전반적으로는 과학과 교육에 관한 것.
아칸소 재판은 창조론자들에 대한 승리지만, 루이지애나의 경우에서 보듯 그 전쟁은 끝나지 않았음.
창조과학이 진정한 과학이 아닌 이유는 그 지지자들이 질문과 논쟁 없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하기 때문임.
창조론자에 대한 싸움이 정당화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비판대상으로 두기 때문.
창조론자들은 다시 덤빌 기회를 노리므로 우리는 용의주도하게 논증을 준비해야 함.
서로 비판해야 하지만, 자신의 비판이 가능한 한 강력한지 확인해야 함.
루스가 우려하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비판자들 사이의 논쟁의 질이 항상 높은 것은 아니라는 점.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라우든과 퀸은 모두 그들이 창조론자들의 문헌을 읽었다는 증거를 보이지 않았음.
경험적 문제에 대한 선험적 접근이라는 철학적 전통이 있지만, 이 사건은 약간의 배경 조사가 핵심적임.
루스는 가끔 스스로 과학과 비-과학 사이의 구획 기준으로서 반증가능성이 제안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가졌음.
창조론자들의 문헌을 읽고 반증가능성 여부가 핵심적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됨.
우리는 창조론자들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의견을 정해놓을 수 없을 것.
(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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