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나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이나 성평등 교육을 한다고 알고 있다. 나도 연초마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성평등 교육을 받는다. 해당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홈페이지 로그인 할 때마다 교육을 이수하라고 팝업창이 뜬다. 교육 프로그램에 있는 동영상을 다 시청하고 문제를 몇 개 풀면 교육 이수증이 나온다.
성평등 교육을 받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려고 하면 그렇게 귀찮다. 윤리학적으로 첨예한 쟁점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영상이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봐도 성차별이거나 성폭력인 것을 놓고 그러면 안 된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꼭 예비군 훈련을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영상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영상이 다 재생되면 퀴즈만 푼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그렇게 한다고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성평등 교육의 실효성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 이런 것을 한다고 성추행 할 사람이 성추행을 안 하느냐, 사람들이 그게 나쁜 짓인 줄 몰라서 하느냐고 묻는다. 맞는 말이다. 그까짓 성평등 교육 동영상을 본다고 하여 개인의 폭력 성향이나 충동 강도 등이 줄어들 리 없다. 그런데 교육의 효과라는 것은 단순히 개인이 몰랐던 것을 알게 한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나쁜 짓을 왜 하는가?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하고 싶으니까 나쁜 짓을 하지 별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싶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태어날 때부터 나쁜 심정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들이 모두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왜 안 하는가? 나쁜 짓을 하려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불쑥불쑥 들더라도 참아야 하는 유인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했을 때 적발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할수록, 그리고 적발되었을 때 지불해야 할 대가가 크다고 판단할수록 나쁜 짓을 할 유인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공공기관이나 회사 등에서 성평등 교육이 진행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성평등 교육을 하는 것을 귀찮아하든 말든 성평등 교육의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교육 내용이 뻔하고 지루하겠지만, 하여간 교육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이 성차별이거나 성범죄임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쁜 짓을 할 유인을 줄여준다. 나쁜 짓을 했을 때 가해자를 감싸줄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는 신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신고율이 높아지고 적발율도 높아진다.
살인, 강도, 절도, 상해 등의 범죄와 달리 성범죄는 가해자들이 해당 범죄의 개념을 가지고 수작을 부린다. 예를 들어, 살해당한 사람이 죽어 마땅한 짓을 했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살인죄 성립 여부가 뒤집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와 달리, 성범죄의 경우 성범죄의 개념을 뒤틀어서 범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성희롱을 저지른 잡범 주제에 정치범인 척하려는 놈들이 생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평등 교육을 하면 그러한 개수작을 부릴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
정리하자면, 성평등 교육 같은 교육의 효과는 개인의 정신 상태를 뜯어고치는 1차적인 효과와 성범죄를 저지르면 변명의 여지 없이 감옥에 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2차적인 효과로 구분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1차적인 효과가 낮다는 점에서 성평등 교육의 효과를 평가절하하고 나도 1차적인 효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지만, 성평등 교육의 주된 효과는 2차적인 효과일 것이기 때문에 성평등 교육의 효과는 어느 정도 유효할 것이다. 그러니까 회사 같은 데서 성평등 교육을 하면 군소리 없이 그냥 받아야 한다.
(202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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