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퍼지니까 싸돌아다니지 말라고 해도, 굳이 새해라고 해 뜨는 거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조상 중에 일출 못 보고 죽은 귀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이런 때 고작 해 뜨는 것을 보러 바닷가로 몰려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바다나 산에서 보는 일출이 장관일 수는 있겠는데 굳이 새해 첫날 보아야 뭔가 의미심장할 것 같지는 않다. 해 뜨는 것이야 1년 내내 똑같다. 계절에 따라 풍경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1월은 너무 춥다. 일출은 따뜻할 때 보아도 된다. 일출을 1월 초에 보나 2월 말에 보나 풍경은 거의 다르지 않다. 굳이 추위에 떨면서 해 뜨는 것을 볼 이유가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한국에 언제부터 새해 첫날에 일출을 보는 풍습이 생겼나 궁금해졌다. 적어도, 조선시대에는 그런 풍습이 있을 법하지 않다. 태양력을 써야 새해 첫날에 일출을 볼 이유가 생기는데 개화기 전까지는 태양력을 거의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음력 설에 일출을 보러 갈 이유도 없다. 설에는 차례 지내고 성묘하기 바쁠 테니 그런 날 해 뜨는 거 보겠다고 나설 정도면 조상도 없고 족보도 없는 쌍놈일 것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방한용품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므로 굳이 겨울에 얼어 죽겠다고 해 뜨는 것을 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적어도 개화기 이전까지는 한반도에서 새해 첫날에 해 뜨는 것을 보는 풍습이 생겼을 법하지 않다.
새해 해맞이 풍습이 개화기 이후에 생긴 것이라면 혹시 일본에서 온 것인가? 물론, 황교익처럼 “짠맛은 일본에서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덮어놓고 일본에서 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짠맛이 바다에서 온 줄 알았는데 일본에서 왔다고 하니 말 다 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현대 한국의 많은 풍습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기는 하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유럽에 해맞이 풍습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일본에만 있던 풍습이라고 하면 한국의 해맞이 풍습은 일본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나는 다른 나라 풍습 같은 것은 모르니까 다른 나라에 그런 풍습이 있나 하고 구글에 “해돋이 유래”라고 검색하니 맨 윗줄에 “해맞이의 유래”라는 경향신문 기사가 나왔다. 역시 혼자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고 자료를 빨리 찾는 게 더 낫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의 장유승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새해 첫 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세계 공통”이지만 “이렇게 집단적으로 열광하는 나라는 드물”고 “집단적・주술적 성격의 새해 해맞이는 일본에서 유래한 풍속”이라고 한다. 짠맛은 바다에서 왔겠지만 새해 해맞이는 정말로 일본에서 왔던 것이다.
한국에서 여론몰이 할 때 반일 치트키만 한 것이 없는데, 왜 새해 해맞이 하는 사람들을 막을 때 반일 치트키를 쓰지 않았나 모르겠다. “새해 해맞이는 일제 잔재”, “새해 해맞이 가면 토착왜구”라고 했다면 사람들이 서로서로 감시해서 일출을 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고 코로나19 방역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는 사람 치고 역사를 잘 아는 사람도 없지만, 역사를 잊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데는 또 역사만한 것도 없다. 역시나 이래저래 역사는 중요한 것 같다.
* 링크(1): [YTN] 가지 말라는데도... ‘해돋이’ 관광지행 열차는 만석
( www.ytn.co.kr/_ln/0103_202012311657195648 )
* 링크(2): [경향신문] 해맞이의 유래 /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801032053005 )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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