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개론서들을 보다 보면,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독자들에게 까불지 말라고 하면서 한 번 밟고 시작하는 책들이 있다. 개소리 해놓고 철학이라고 우기는 풍습이 전 세계 공통인 모양이다. 리처드 테일러가 쓴 『형이상학』에서는 아예 「서론」 맨 처음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철학이 있고 심지어는 형이상학적 견해가 있다고도 한다.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의견들을 가지고 있고 이 의견들 중에는 종교나 윤리, 인생의 의미에 관한 견해도 있어서 철학이나 형이상학과 흡사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철학의 개념을 지니는 것은 거의 없으며 형이상학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더욱 그렇다.
[...] 드물게 사려 깊은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존재나 목적, 의미 등 형이상학자들이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질문들을 그냥 당연히 받아들인 채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모든 생명들, 모든 인간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이며 일단 이것이 어느 정도 확인되면 될 수 있는 한 안전하게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모든 생각들은 거기서 비롯되고 또 대개는 거기에 머문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저런 것을 ‘어떻게’(how) 하느냐에 관해 생각하는 데서 그친다. 따라서 공학이나 정치, 산업 등은 사람들에게 퍽 자연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인생을 사는 방법에 관여하지 않으며, 그 이유에 관해서, 즉 어떤 사람이 한평생 전혀 묻지 않기가 너무도 쉬운 질문들에만 관여한다는 것이다.(p. 1, 21-22쪽)
이 책은 학부 때 <존재론> 수업 때 교재로 썼던 책이다. 하르트만을 전공한 선생님이 맡은 수업이었는데 교재 중 상당수가 분석철학 쪽 책이었다. 나중에 대학원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과학사 선생님도 그 선생님을 알고 있었다. “과학은 전혀 모르는 현상학자입니다만”이라고 말씀을 꺼내지만 과학에 대해 꽤 많이 알고 계신 분이라고 했다.
그 선생님이 가끔씩 수업 중간에 화를 참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수업 중에 어떤 미친놈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하면 꼭 그의 맞수들이 그에 대응할 만한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곤 했다. 왜 그 시절에는 공부도 안 하는 놈들이 수업시간에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 개소리 배틀이 벌어지면 선생님은 가만히 계시다가 평온한 얼굴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그렇지만, 좀 안 좋은 학교들에서는 학생들이 이러저러한데 그래도 우리 학교는...” 하면서 갑자기 뜬금없이 학생들 수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래도 우리 학교 학생들은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하셨다. 학생들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니까 선생님도 뜬금없는 소리를 해서 아무도 뜬금없는 소리를 못 하게 하려는 일종의 맞불 놓기였나?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하고 같이 다니던 동기가 피식 웃으면서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야, 선생님 또 화났다. 오늘은 화 많이 났나봐.” 그러면 나도 이렇게 적었다. “나도 알아.”
지난 주말에 리처드 테일러가 쓴 『형이상학』을 한 번 죽 훑어 읽었는데, 서론을 읽다가 학부 때 생각이 났다. 그냥 수업 시작 할 때 서론 맨 처음에 나오는 두 문단만 읽으시지. 그랬다면 선생님도 좋고 학생들도 좋았을 텐데.
* 뱀발
심리철학 관련해서 교육용으로 많이 쓰는 그림 중에 하나가 이 책에 나오는 그림이다. 치솜 (Roderick M. Chisholm)이 그려준 것이라고 한다. 그림 우측 하단에 있는 RMC는 치솜 이름의 약자이다. 원서 기준으로 17쪽에 있다.
* 참고 문헌
Richard Taylor (1992), Metaphysics, 4th Edition (Prentice Hall).
리처드 테일러, 『형이상학』, 엄정식 옮김 (서광사, 2006).
(20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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