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하여 자신의 외모에 대해 훨씬 관대하다고 한다. 적지 않은 남자들이 못 생긴 주제에 여자들의 외모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이와 관련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학계에서는 전혀 인정하지 않지만) 유력해 보이는 가설은 ‘엄마 가설’일 것이다. 엄마들이 못 생긴 아들을 낳아놓고도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 아들 잘 생겼네!” 하면서 아들에게 과도한 자신감을 심어주어서 결국 사회문제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엄마들이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들한테 “우리 아들 잘 생겼네!”라고 해도 아들은 엄마한테 “엄마도 참 예뻐요!”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엄마는 예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들이 자기 아들을 보고 잘 생겼다고 하는 것은, 못 생긴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의 외모를 칭찬하는 일종의 품앗이와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행위다.
나의 어머니는 어떤가. 나의 어머니는 냉철한 분이다. 가끔씩 나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 이, 어렸을 때는 참 예뻤는데.” 여기서 핵심은 두 군데다. “아- 이”는 아쉬움이나 한탄을 나타내는 감탄사다. 그리고 “예뻤는데”는 과거형으로 현재 사실과 무관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렸을 때의 예쁨이 지속되었다고 생각했다면 현재형이나 현재완료형을 썼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족에 대해서는 온정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의 외모는 훨씬 더 냉정하게 평가한다.
지난주에는 날씨가 추워서 기숙사에서 집에 갈 때 털모자를 쓰고 갔다. 어머니는 털모자를 쓴 모습을 보고 화를 냈다. “내가 멀쩡한 거 사줬잖아! 어디서 꼭 이렇게 이상한 걸 쓰고 다녀?”, “엄마가 사준 거예요!”, “내가 언제 이렇게 이상한 걸 사줬어?”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큰 소리로 화를 냈고, 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가 모자 좀 벗어보라고, 얼마나 이상하게 생긴 모자인지 어디 보자고 해서, 나는 어머니께 모자를 벗어드렸다. 어머니는 모자를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 모자가 이상한 게 아니네?”
모자가 이상한 게 아니라니, 도대체 뭐가 이상했던 것인가?
(2021.01.13.)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