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9

의도적으로 혼란을 주는 글쓰기?



동료 대학원생이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무슨 공동체에서 사람들하고 같이 철학자로 여겨지는 사람의 글을 읽었다고 한다. 내가 ‘철학자로 여겨지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분명히 철학자는 아닌데 철학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철학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하여간 동료 대학원생이 아무리 글을 읽어도 글이 이상해서 글이 이상하다고 하니 같이 글을 읽던 사람들이 그랬다고 한다. “그런 글은 쓸 때 일부러 혼란을 주려고 의도한 측면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내가 혼란스러워졌다. 일부러 혼란을 주려고 의도하는 글이라니. OSS의 <손쉬운 방해공작 현장 매뉴얼>(Simple Sabotage Field Manual: Strategic Services) 같은 데 나오는 내용인가? 정보기관 같은 데서 적국의 학문 공동체에 첩자들을 침투시키면서 일부러 혼란을 주려고 의도하는 글쓰기를 하라고 지령을 내리면, 해당 공동체에서는 연구도 아닌 것을 마구 생산하며 연구라고 우기는 사람들 때문에 혼란이 일어나고 생산성이 크게 저하되기는 할 것이다.

의도치 않게 혼란을 주는 글을 쓰는 것과 의도적으로 혼란을 주는 글을 쓰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의도치 않게 혼란을 주는 글은 눈물을 머금고 억지로 내는 기말보고서 같은 것이다. 의도적으로 혼란을 주려고 쓰는 글이라는 것은, 기한 내에 정상적인 글을 써서 보낼 수 있었는데도 담당 교수가 기말보고서를 받고 화가 나게 하려고 일부러 이상한 글을 써서 보냈다는 말이다. 보통은 정상적인 글을 쓸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글을 쓴다.

어떤 혼란스러운 글이 나왔을 때 일부러 그렇게 썼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정상적인 글을 쓴 다음, 어떤 절차와 단계를 거쳐서 일부러 혼란을 주는 글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그런 글을 쓴 사람이 죽었거나 정상적인 글쓰기 능력을 보이는 것을 거부해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런 글쓰기를 옹호하는 사람이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피카소가 황소 연작을 통해 정물화에서 몇 단계에 거쳐 이상해 보이는 그림이 나오는지 보여준 것처럼, 정상적인 글에서 퇴고를 몇 번 거치면 혼란스러운 글이 되는지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제대로 된 내용 없이 어떻게든 글을 기괴하게 써서 승부를 보려는 사람들도 많으니, 혼란스러운 글 연작 같은 작품들이 나온다면 그런 지망생들에게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런 작품은 나오지 않고 있으니, 설사 그런 글을 쓴 사람들에게 정말로 정상적인 글을 쓸 능력이 있더라도 교육자로서의 자질까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202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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