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이 새끼인 털복숭이가 언젠가부터 마당에 똥을 싸기 시작했다. 똥 상태를 보니 장 건강이 괜찮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마당에 똥을 싸는 것인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도 집 밖에서 똥을 쌌고 예전에 했던 것을 못할 만큼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러는가?
시기를 따져보니 털복숭이가 마당을 화장실처럼 이용한 시기와 털복숭이의 털을 깎으려 시도한 시기가 대충 비슷했다. 화천이와 달리 털복숭이는 털이 길어서 항상 털이 헝클어져 있다. 그 털이 계속 자라고 엉켜서 일종의 층처럼 된 것이다. 작년에 피부병이 나서 동물병원에서 치료받기도 했다. 올해는 작년처럼 피부병이 나지는 않았지만 털이 더 안 좋은 상태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병이 나기 전에 털을 깎기로 했다.
나도 내 머리를 내가 깎는 판에 고양이를 미용사에게 맡길 수는 없었고 결국 나와 아버지가 고양이털을 깎게 되었다. 나는 털복숭이가 한눈팔고 있을 때 몰래 접근해서 가위로 자르는 방식으로 잘랐고, 아버지는 털복숭이를 붙잡고 이발기로 밀어버리는 방식으로 잘랐다. 하마터면 아버지가 털복숭이 털을 한 번에 다 깎아 없앨 뻔 했는데, 털층이 하고 두꺼워서 이발기로 금방 잘리지도 않았고 고양이털을 다 없애면 고양이 건강에 안 좋다고 내가 말리기도 해서 고양이털을 다 밀지는 않았다. 그렇게 여러 날에 걸쳐서 털복숭이의 털을 순차적으로 깎았고 이제 3분의 2 정도를 이발하게 되었다.
문제는 털복숭이가 털 깎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털 깎이는 것 자체도 싫겠지만 털을 깎으면서 털을 잡아당길 때 아픈 것도 싫어할 것이다. 밥 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멀리서 뛰어오던 털복숭이는, 내가 가위를 들거나 아버지가 이발기를 들면 슬금슬금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동네를 멀쩡히 잘 돌아다니다가 똥은 꼭 마당에 싸기 시작했다.
마당에 있는 똥을 치우면서 어머니는 예전에 직장 동료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하셨다. 어느 날 직장 동료 집에 못 보던 고양이가 와서 야옹 야옹 하고 울었다. 아마도 고양이는 배가 고파서 밥을 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머니의 직장 동료는 고양이를 싫어해서 밥도 안 주고 그 고양이를 쫓아버렸다. 그 다음날 고양이가 와서 울었을 때도 그 고양이를 쫓아냈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더 이상 고양이가 더 이상 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마당 한가운데 똥이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마당에서 똥을 싸는지 궁금해서 CCTV로 확인해 보았더니, 집에 찾아와서 울던 그 고양이가 조용히 마당에 와서 똥만 싸고 잽싸게 도망가는 것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고양이가 영물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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