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폐지함에서 남의 발제문을 주워서 읽어본 적이 있다. 라이프니츠와 클라크의 논쟁을 다룬 과학사 논문에 관한 발제문이었다. 발제문을 읽다가 뭔가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발제문에는 뉴튼에 반대한 자유사상가(free thinkers)나 이신론자의 입장이 “인간의 행동은 자유롭다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취해질 뿐”이라고 되어 있었다. 흐름상 그들이 그렇게 말했을 것 같지는 않고, 또 인간이 자유롭지는 않은데 필요에 의해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원문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 the freethinkers espoused the view that human actions were not free but were, rather, the outcomes of necessity.” 원래 내용은 자유사상가들은 인간의 행동은 자유롭지 않고 필연성의 결과라는 견해를 옹호했다는 것이었다. 발제자는 논문의 일부분을 정반대로 이해했다.
내가 해당 논문을 대충 읽은 것이 6-7년 전쯤이고 그나마 읽은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발제문을 보고 틀린 부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발제자가 어느 논문에서 어느 부분의 내용을 요약했는지 발제문에 표시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표시가 없었다면, 나는 그 발제문을 읽고 뭔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을 뿐 어느 부분에서 어떤 실수를 했는지 못 찾았을 것이다.
발제자가 논문을 요약 정리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그 논문에 대한 논평을 하거나 자신의 구상 등을 밝히는 방식으로 발제문으로 썼다면, 상황은 훨씬 더 안 좋았을 것이다. 발제문을 읽는 사람은 어느 부분이 쓸 만한 생각이고 어떤 부분이 별다른 가치가 없는 부분인지 판단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논문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 발제문만 읽는다면, 논문이 이상한 건지, 발제자가 오해한 건지, 발제자가 오해하지 않았지만 이상한 생각을 한 것인지 알아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시간을 들여 이러한 세 가지 가능성 중 어느 쪽에 해당되는지 알아냈다고 해도 별다른 수확은 없다. 그렇게 할 거면 각자 알아서 논문을 읽으면 되지, 굳이 발제문을 쓰고 다른 사람과 발제문을 같이 읽을 필요가 없다.
남의 발제문의 작은 결함을 트집 잡으려고 발제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내가 대학원 다니면서 논문 잘 못 읽고 발제 이상하게 한 것을 생각하면, 폐지함에서 주운 발제문의 결함이란 별 게 아니다. 발제문의 작은 결함을 찾고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은, 기초적인 작업의 중요성이다. 어느 부분에서 어떤 이해를 했는지 밝혀놓았으니 사소한 결함도 찾고 고칠 수 있었다. 사소한 결함도 드러나도록 발제문을 쓰면 조금 부끄러울 수 있지만, 어떠한 결함도 드러나지 않도록 발제문을 쓰면 잠시 안 부끄럽고 나중에 몰아서 크게 부끄럽게 될 수도 있다. 어떤 논문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지 않고 정돈되지 않는 생각이나 늘어놓는 짓을 한다면, 논문도 진척되지 않고 시간이나 허비하게 될 것이 뻔하다. 마음이 급하고 일의 진척이 더디다고 해도, 필요한 단계를 건너뛰지 말고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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