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6

[중국사] 진수 『삼국지』 권36 위서6 「관장마황조전」 요약 정리 (미완성)

   
[ 진수, 『정사 삼국지 촉서』, 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 2018) ]


□ 관우전
□ 장비전
□ 마초전
□ 황충전
□ 조운전
  

□ 관우전

■ 
- 관우(關羽)는 자(字)가 운장(雲長), 본래 자(字)는 장생(長生), 하동(河東)군 해(解)현 사람.
• 망명하여 탁군(涿郡)으로 달아남.
• 유비가 고향에서 무리를 모으니 관우는 장비(張飛)와 함께 그를 위해 호위함.

■ 
- 유비가 평원(平原)의 상(相)이 되자 관우와 장비를 별부사마(別部司馬)로 삼고 군대를 나누어 통솔하게 함.
• 유비는 잠잘 때도 두 사람과 함께 하며 정이 형제와 같았음.
•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관우와 장비는 종일토록 시립(侍立)했고, 유비를 따라 다니며 고난과 위험을 피하지 않음.
- 유비는 서주자사 차주(車冑)를 습격해 죽이고, 관우에게 하비성(下邳城)을 지키며 태수의 일을 대행하도록 하고 자신은 소패(小沛)로 돌아감.

- 건안 5년(200년), 조조가 동쪽을 치자 유비는 원소(袁紹)에게로 달아남.
• 조조는 관우를 사로잡고 돌아와 편장군(偏將軍)에 임명하고 매우 후하게 예우함.
- 원소가 대장군 안량(顔良)을 보내 백마(白馬)에서 동군 태수 유연(劉延)을 공격하게 함.
- 조조는 장료(張遼)와 관우를 선봉(先鋒)으로 삼아 이를 공격하게 함.
- 관우는 안량의 휘개(麾蓋: 병거에 달린 대장기 덮개)를 멀리서 보고 말을 채찍질해서 달려가 많은 병사들 사이에서 안량을 찌르고 그 머리를 베어 돌아옴.
• 원소의 여러 장수들 중 당해낼 자가 없었고 백마의 포위를 풀었음.
• 조조가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漢壽亭侯)에 봉함.

- 처음에 조조는 관우의 사람됨을 크게 여겼으나 그의 마음에 오래 머물 뜻이 없음을 살피고는 장료에게 시험 삼아 그 뜻을 물어보게 함.
• 장료가 관우에게 묻자 관우가 탄식하며 말함. “나는 조공께서 후히 대우해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유 장군(좌장군 유비)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으니 이를 저버릴 수는 없다. 나는 여기 끝까지 머물 수는 없으나 반드시 공을 세워 조조께 보답한 뒤에 떠날 것이다.”
• 장료가 관우의 말을 조조에게 보고하니 조조가 이를 의롭게 여김.
- 관우가 안량을 죽이자 조조는 관우가 떠날 것을 알고 포상을 더욱 무겁게 베풀었음.
• 관우는 하사받은 것을 모두 봉해 놓고 작별을 고하는 서신을 올린 후 원소군에 있던 유비에게로 달려감.
•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관우를 추격하려 하자 조조가 이를 말림, “사람은 각자 자기 주인이 있으니 뒤쫓지 말라.”

■ 
- 관우는 유비를 따라 유표(劉表)에게 의탁함.
- 유표가 죽고 조조가 형주(荊州)를 평정하니, 유비는 번(樊)성으로부터 남쪽으로 장강을 건너려 하여, 따로 관우를 보내 수백 척의 배를 이끌고 강릉(劉表)에서 만나기로 함.
• 조조가 추격하여 당양(當陽)현 장판(長阪)에 이르자, 유비는 한진(漢津)으로 나아가다 때마침 관우의 배와 만나게 되어 함께 하구(夏口)에 도착함.
- 손권이 군대를 보내 유비를 도와 조조를 막고 조조가 군을 이끌고 물러남.
• 유비는 강남의 여러 군을 거두어들이고는 공훈을 세운 사람들을 봉배(封拜)하니 관우를 양양(襄陽) 태수 탕구장군(盪寇將軍)으로 삼아 강북에 주둔하게 함.
• 유비가 서쪽으로 익주(益州)를 평정할 때 관우를 동독형주사(董督荊州事: 형주의 사무를 지휘 감독)로 임명함.

■ 
- 관우는 마초(馬超)가 항복해 왔다는 말을 듣고는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사람이 아니어서 제갈량에게 서신을 보내 마초의 사람됨과 재주가 누구에 비교될 수 있는지 물음.
• 제갈량은 관우의 호승심이 강함을 알았으므로 이에 다음과 같이 답함.
• “맹기(孟起, 마초)는 문무를 겸비하고 용맹함이 남보다 뛰어난 당대의 호걸로 경포(黥布), 팽월(彭越)과 같은 무리입니다. 익덕(益德: 장비)과 말머리를 나란히 해 달리며 선두를 다툴 수는 있으나 염(髥) 그대의 출중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 관우는 수염이 아름다웠으니 이 때문에 제갈량이 관우를 일컬어 염(髥)이라 한 것.
• 관우는 이 서신을 읽어보고 크게 기뻐하며 빈객(賓客)들에게 보여줌.

■ 
- 일찍이 관우는 화살에 맞아 왼팔을 관통 당한 일이 있었음.
- 그 뒤 상처는 치유되었으나 흐리거나 비오는 날이면 늘 뼈가 아팠음.
• 의원: “화살촉에 독이 있어 이 독이 뼈에까지 들어갔습니다. 팔을 갈라 상처를 내고 뼈를 깎아 독을 제거하면 통증이 없어질 것입니다.”
• 관우는 곧 팔을 펴고 의원에게 자신의 팔을 가르게 함.
- 이때 관우는 때마침 제장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먹으며 함께 하고 있었음.
• 팔에서 피가 흘러 반기(盤器)에 가득 찼으나 관우는 구운 고기를 자르고 술잔을 끌어당겨 담소를 나누며 태연자약했음.

■ 
- 건안 24년(219년), 유비가 한중왕(漢中王)이 되자 관우를 전장군(前將軍), 가절(假節)과 월(鉞)을 줌.
• 이 해, 관우가 군사를 이끌고 번(樊)에서 조인(曹仁)을 공격함.
• 조조가 우금(于禁)을 보내 조인을 돕게 함.
- 가을에 큰 비가 내려 한수(漢水)가 범람하고 우금이 이끌던 칠군(七軍)이 모두 물에 잠김.
• 우금은 관우에게 항복했고, 관우는 장군 방덕(龐德)을 참수함.
• 양(梁, 예주 양국), 겹(郟, 영천군 겹현) 육혼(陸渾, 홍농군 육혼현)의 도적들이 멀리서 관우의 인호(印號, 관인과 봉호)를 받아 관우의 일당이 됨.
• 관우의 위세가 중원에 진동함.
  
■ 
- 조조가 허도(許都)를 옮겨 관우의 예봉을 피할 것을 의논함.
• 사마의와 장제(蔣濟): “관우가 뜻을 이루는 것을 손권이 원하지 않을 것이니 사람을 보내어 손권이 그 배후를 치도록 권할 만하다. 강남(江南)을 떼어 손권을 봉한다면 번(樊)의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이다.”
• 조조가 이에 따름.
- 그 전에 손권이 사자를 보내 자신의 아들을 위해 관우의 딸을 청한 일이 있었음.
• 관우가 그 사자를 모욕하며 혼인을 허락지 않으니 손권이 대노했음.
- 남군태수 미방(麋芳)이 강릉(江陵)에 있고 장군 사인(士仁)이 공안(公安)에 주둔했는데 그들 모두는 관우가 자신들을 업신여기는 것에 평소 원한을 품었음.
• 관우가 출군한 이래 미방과 사인은 군수물자를 공급했으나 그를 돕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자 관우는 “돌아가면 응당 죄를 다스릴 것”이라고 함.
• 미방과 사인은 모두 두려움을 품고 불안해함.
• 손권이 은밀히 미방과 사인을 꾀자 미방과 사인은 사람을 시켜 손권을 맞이함.
- 조조는 서황을 보내 조인을 구원했고 관우가 이를 이기지 못하자 군을 이끌고 돌아감. 
- 손권이 이미 강릉을 점거하고 관우의 병사들의 처자를 모두 사로잡자 관우군이 흩어짐.
• 손권은 장수를 보내 관우를 공격하고 관우와 그의 아들 관평(關平)을 임저(臨沮, 형주 남군 임저현)에서 참수함.

■ 관우의 후계자
- 유비는 관우에게 시호를 추증해 장무후(壯繆侯)라고 함.
- 아들 관흥(關興)이 작위를 이음.
관흥의 자는 안국(安國)
어려서 명성이 있어서 승상 제갈량은 그를 심히 높게 평가함.
약관의 나이에 시중(侍中), 중감군(中監軍)이 되었다가 몇 해 뒤에 죽음. 
- (관흥의) 아들 관통(關統)이 작위를 이음.
공주를 아내로 맞았고 관직이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에 이르렀음.
관통이 죽은 후 자식이 없어 관흥의 서자(庶子)인 관이(關彝)가 작위를 잇도록 함.


□ 장비전
□ 마초전
□ 황충전
□ 조운전


■ 진수의 평
- 관우와 장비는 모두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 칭해진 당대의 범 같은 신하(虎臣).
관우는 조조에게 보답했고 장비는 의(義)로써 엄안(嚴顔)을 놓아주었으니 국사(國士)의 풍모가 있었음.
그러나 관우는 굳세고 자부심이 강하고 장비는 난폭하고 은혜롭지 않아 자신의 단점 때문에 패망하게 되었으니 이치상 당연함.

  
  
(20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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