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4

인문학의 위기를 다루는 영상들은 왜 쓸데없는 소리나 늘어놓는가?



‘이공계의 위기’와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언론의 반응을 비교하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공계의 위기에 대한 언론 보도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이공계가 죽으면 산업도 죽고 나라도 망한다는, 매우 쉽고 상식적이고 직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했다. 똑같은 위기지만,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언론 보도는 다르다. 복잡-미묘하면서도 설득력도 없고 석연치 않은 비슷한 이야기를 약간씩 바꾸면서 늘어놓는다. 언론사만 다르지 다 비슷한 이야기다.

인문학의 위기를 다루는 언론 보도에 꼭 들어가는 내용이 있다. 일단, 인문학이 무엇이냐면서 인문학의 어원과 역사를 꼭 소개한다. 인문학이 사회에서 왜 필요한지도 묻는다. 그런 것을 왜 넣는지 모르겠다. 기업에서 인문대를 졸업한 학생들을 안 뽑는다는데, 인문학이 무엇이든 말든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그걸 알면 기업에서 인문학 졸업생을 뽑을 이유가 생기는가?

jtbc에서 만든 <조승연 작가가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영상은 그 중에 그나마 잘 만든 영상이지만 역시나 내용이 별로다. 잘 만든 게 이 정도다. 우선, 문제 설정부터 잘못되었다. 이런 자막이 나온다. “이제는 인문대생들도 자신에게 묻고 싶다. 인문학이 진짜 그렇게 쓸모없는 학문일까.” ‘인문학’이라는 말을 ‘발레’나 ‘매사냥’ 같은 말로 바꾸어보자. “매사냥이 진짜 그렇게 쓸모없는 것일까.” 누구라도 ‘기업에서 왜 매사냥 전수자를 왜 뽑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누가 발레나 매사냥이 사회적으로 쓸모없고 가치 없다고 했는가? 그런 건 국립무용단이나 문화재청 같은 데서 신경 쓸 것이지 기업이 신경 쓸 것이 아니다. 그런데 개인 차원, 사회 차원, 기업 차원을 구분하지 않고 대충 뭉쳐서 인문학의 쓸모나 가치를 묻는다.






“인문학은 리버럴 아츠”이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결정권자들을 위해서 기초교육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하버드나 옥스퍼드나 예일 같은 데서는 인문학의 위기가 없다”는 내용도 나온다. 하버드나 예일에는 당연히 인문학의 위기가 없다. 왜? 하버드, 예일이니까. 그런데 미국에는 대학이 4천 개나 있다. 하버드, 예일이나 되니까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인가, 인문학을 가르치니까 하버드, 예일이 되는 것인가? 하버드, 예일에서 교양교육을 하든 말든, 그래서 그게 기업에서 인문대 졸업자를 뽑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가?

그렇게 따지면 한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대에는 인문학의 위기가 없다. 왜? 서울대 철학과 졸업생 중에는 철학자가 되는 사람보다 변호사 되는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교양교육을 점점 강화하고 있으니 한국 변호사들의 교양 수준도 점점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한국에는 대학이 2백 개나 있다. 서울대에 인문학에 위기가 없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인문학의 위기가 그렇게 걱정되고 인문대 졸업자들이 취직 못하는 것이 그렇게 걱정되면, 기업에서 왜 인문대 졸업자를 뽑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 된다. 작가들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자신도 없고 전문가를 모셔올 수완도 없으면, 인문대 출신 중에 성공한 기업인이나 기업 임원을 모셔놓고 인터뷰하면 된다. 그런 사람들은 인문대 출신들이 기업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 일을 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허튼 소리나 나온다. 왜? 방송국 작가들이 무능해서? 무능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가능성도 열려 있기는 하다.

기업에서 성공하거나 적어도 잘 적응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최소한 석사 이상의 학위가 있거나 그에 상응하는 지식을 갖춘 경우다. 대학원 선배 중에 어떤 대기업에서 최연소 임원에 거의 근접한 나이에 임원이 된 사람이 있다. 고속 승진의 비밀은 투자 성공에 있다. 대기업에서 해외에 투자할 때는 한 군데에 몰빵 하는 것이 아니라 두세 군데 정도로 나누어서 투자한다고 한다. 조를 나누어 투자처와 투자방법을 결정하는데, 투자 결과에 따라 투자 의견을 제시한 사람들의 진로도 좌우된다. 그 선배는 해외 투자가 연달아 여러 번 성공하면서 고속 승진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미국 기술사로 석사 학위를 받은 것이 유효했다고 한다. 이 사례는, 기업에서 인문학이 도움이 되려면, 적어도 석사 이상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자기 전공과 직장 생활이 거의 무관한 경우다. 사학과 출신 선배는 회사에서 보안 담당자로 일하는데 전공과 무관한 일이다. 중어중문학과 출신 동기는 회사에서 인사 담당자로 일하는데 역시나 전공과 무관한 일이다. 러시아어문학과 출신 후배는 학원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워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데 이 또한 전공과 무관하다. 회사 생활을 멀쩡히 잘 하는 나의 선배, 동기, 후배는 모두 전공과 아무 관련 없이 잘 살고 있다.

기업에서 활약하는 인문대 출신 직장인을 보여준다면, 대부분 석사 이상이거나 인문대로 학부를 졸업했지만 전공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일 것이다. 정상적인 영상을 만든다면, 인문대 학부 졸업자들이 취업할 때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일하는 데도 그들의 전공이 별반 도움이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작가들이 무능해서 내용 없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그러한 불편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영상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불편한 사실을 죄다 빼면, 영상에 넣을 내용이라고는 스티브 잡스나 조지 소로스 등 철지난 떡밥밖에는 없다. 인문학이 가치 있고 인문대에서 배운 것이 가치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은데 인문대 출신들의 성공적인 회사 생활을 보여주면 인문학의 가치를 못 보여줄 것 같으니까 어디서 작가 하나 데려와서 입 발린 소리를 하게하는 것은 아닌가.

자기 전공을 사랑하는 그 마음만은 아름다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자기 전공을 사랑하면 곱게 대학원을 가지, 왜 그렇게들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영상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인문대뽕을 갓 맞은 학부생이 만든 것 같은 영상은, 이제 그만 만들 때도 된 것 같다. 기초 학문에 대한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영상을 만들든지, 기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여주든지, 하여간 연구든 취업이든 인문대 졸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영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 링크: [jtbc] 조승연 작가가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 / 소셜스토리

( www.youtube.com/watch?v=bVGN6LQIjtc )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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