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9

정부의 학술 지원에 대하여

     

내가 대학원생인데, 지도교수한테 이런 연구를 해라 저런 연구를 해라 간섭하고 학부 수업은 이런 수업을 만들어라 저런 수업 만들어라 참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대학원생이고 상대방이 교수라서가 아니라, 교수의 판단을 평가할만한 능력이 나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대학원을 그만두고 행정고시를 보았는데 그만 시험에 합격해버렸다고 해보자.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부에서 하는 학술 지원 사업에 지도교수가 사업계획서를 내면 그 계획서를 내가 심사할 수도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도 대학원을 다니다 그만둔 경우라면 다행일 것이다. 어쨌든 해당 업계의 사정을 알 것이고 잘못 판단하더라도 선생님들이 개입하기 쉬울 것이다. 내가 허튼 짓거리를 하면 전 지도교수가 조용히 나를 부를지도 모른다. “◯◯이, 그건 자네가 조금 잘못 생각하는 것 같네만.” 그런데 아예 접해본 적도 없는 분야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게 된다고 하자. 해당 업계 사람들은 나를 설득해야 하고 내가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문학 분야 학술지 평가를 하는데 문학에 대해 쥐똥만큼도 모르는 내가 “어? 철학 학술지는 이러지 않던데요?”라고 한다면? 나 같은 사람이 아예 과학이나 예술 분야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면?
  
어느 학술대회에서 어느 선생님이 발표를 시작할 때 인사말로 이런 말씀을 한 적도 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 중에서 대통령도 나오고 국회의원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교수나 박사나 대학원생이었는데, 맥락상 그 선생님이 말씀하신 “여러분”은 대학원생을 가리킨 것 같았다. 대학원생 중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나올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으며, 된다고 한들 어느 세월에 그렇게 되겠는가? 내가 그 선생님과 그와 관련하여 대화하지 못했지만 짐작하건대 관료들을 설득하느니 그나마 말귀 알아듣는 대학원생이 자라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2018.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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